2023.12.1 대학원 합격자 발표가 난 뒤, 나는 퇴사를 했다. 입학 전까지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 하면 꽉꽉 채워 놀 수 있을지만을 고민하며 그간 여유를 못내던 장기여행과 운동에 온 힘을 쏟았다. 그 세 달동안 나는 정말 맘편히 행복했다.
2023년은 근 10년간 가장 행복했던 해였던만큼 그 해의 나 스스로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고, 조금더 조금더 점진적 과부하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운좋게 대학원 입학 시험을 잘봤고, 일하면서도 조카와 가족들과 틈틈히 여행을 다니며 하루 하루를 소중히 보냈던 밸런스가 잘 맞았던 해였다.
2023년을 뒤로하며 연말내내 DAY6의 노래,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를 진심으로 감사하며 들었다. 단순히 2023년 한 해가 아니라 2023년에 오기까지 거쳐온 나의 선택과 그 선택의 결과로 겪어 온 모든 경험들에 감사했다.
하지만 모든 게 다 뜻하는 바대로 될 수는 없지 않나. 사람 마음은 내 맘대로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상실을 안고 미지의 그곳 델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에 가기 전 나를 고민케하는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인도에 가기 전에 꼭 그러고 싶었다.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늘 접속되어있던 인터넷세상과 단절되고 내겐 책 한 권과 아이패드만이 남았는데 신기하게도 핸드폰에 오프라인으로 저장된 노래도 저 노래뿐이어서 인도로 가는 10시간의 비행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저 노래를 들었다. 행복했던 나의 2023년, 그리고함께 한 순간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비행기가 중국 대륙을 넘어 계속 인도를 향해 날아갔고 한 시간 한 시간 지날수록 나의 마음도 점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연이 아닌 것을 붙잡아 무엇하리. 그렇게 글쓰기와 생각을 반복하던 나는 하늘 길에 나의 미련을 날려버렸다.
나를 괴롭히던 생각은 또 있었다.
퇴사를 하고 대학원을 가기로 선택한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20대와 달리 30대가 되어 가는 명백하고 확실한 이유를 찾아댔고, 다시 펼쳐질 불확실한 미래, 2번의 실수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충분히 깊게 생각하고 가는 것이 아닌 가게되어 가는, 갈 수 있어서 가는 느낌도 얼핏 드는 동시에 지금은 새로운 문을 열고 너머의 세상으로 넘어갈 시간이 되었다는 인지도 있는 그런 긴가민가한 싱숭생숭한 마음.
인도에 가는만큼 류시화의 신작인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들고 갔는데, 나는 모퉁이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았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심히 고민이 되었다.
한편으론 일단 이 길을 가기로 결정을 하긴 했는데, 그 단단한 근거를 마련해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걱정은 상상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마음보다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마음의 무거움이 자신을 짓누르지 않도록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 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비행기는 히말라야 산맥에 가까워지더니 이후델리공항에 내렸다.
나를 데리러 나온 언니와 서로를 반가워하며 우리나라에서의 카카오택시와 같은 블루스마트를 타고 델리에 들어섰다. 그런데 택시를 타자마자 아끼던 은목걸이가 끊어졌다. '인연은 그렇게 끝인건가' 별 시덥잖은 의미를 부여하며 델리 시내로 들어섰다.
델리는 뿌얬다.
저녁인데도 뿌연 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던 인디안 게이트는 내가 인도로 들어왔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보다 3시간 더 일찍 도착한, 오늘 처음 만나게 된 룸메이트이자 동행인 그분과 비몽사몽으로 인사를 나누고 비행기에서 적은 카드를 건넸다.
며칠 뒤 결혼식 때 입을 옷들을 피팅해보고 한국 시간으로 새벽 몇시려나... 인도에서의 첫 채식식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