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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ul 08. 2015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05

미션: 스토리보드를 만들어라. 

 2010년 12월~2011년 1월

 

 인턴쉽을 했었던 아일랜드 스튜디오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은 건 12월 말경. 


 스튜디오 대표님은 아일랜드 예술대학에 교수직도 맡고 계셨다. 1월 말에 본인의 작품 조언도 구할 겸 학생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도 열 겸 미국에서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님을 초빙한다고 했다. 만약 이 수업에 관심이 있다면 참여하지 않겠냐는 일종의 초대장이었던 셈.

  명시된 기간은 방학이 아닌 학기 중이라 잠시 고민이 되긴 했지만 머잖아 흔쾌히 그에 응했다. 얘기가 나온 마스터클래스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졸업 후 그곳에 가서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었기 때문이다. 메일이나 다른 간접적인 방법이 아닌 직접 그리로 가 이와 관련된 얘기를 진지하게 꺼내볼 참이었다.

 

 물론 그 기회에 지금 작업하고 있는 <너무 소중했던, 당신> 과 관련한 조언을 듣을 수 있겠다는 의중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 작업을 외부에 소개하려 하니 그에 적합한 작업물이 마땅히 없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짧게 흩어져 있는 테스트 필름 몇 개와 머릿속에만 뜨문뜨문 존재하는 이미지들, 그리고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시나리오- 그 뿐이었다.  이 내용을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설명할만한 작업물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정확히 짚고 왔어야 할 과정을 너무 급하게 건너뛴 부작용은 이렇게 작업이 시작된지 두 달만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심호흡 한번 하고- 


 아직 2주 정도의 기간이 남아있다. 이를 계기로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이미지로 쭉 훑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조금 늦었지만 스토리보드 작업에 들어갔다.


  스토리보드라는 작업에 걸맞게 인물의 동선이나 컷의 구성도 더 짜임새 있게 작업했어야 하지만 이때는 그보다 간략하게 상황만 파악할 수 있게끔 굵직한 이미지들로 컷을 마무리짓고 차후에 씬별로 이를 더  구체화시키기로 한다.


아래는 스토리보드의 전체 51페이지 중 한 부분을 발췌한 이미지이다. 


*10~13페이지. 

 지하 세계로 도착한 사물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동자와 토끼가 폼을 잡고 있다. 


 동자가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있어 그들을 연결 짓는 매개체를 "콘센트  코드"로 설정했다. 이를 두고 누군가 애니메이션 컨셉에 비해 너무' 디지털적'인 것 아니냐-고 물어왔었고 나는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디지털적'인건 이런 하찮은 선도 존재하지 않는 '무선'이 아니겠냐- 대답했었다. 기인지 아닌지를 떠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때는 우체통 받침대까지 있는 설정이었지만, 훗날 이 받침대는 없애고 우체통만 등장하는 것으로 바꿨다.

   

 


 아래는 이 부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최종 완성 영상이다. 추가되고 수정된 부분이 (아주) 많지만 최대한 '처음의 내 의지'와 멀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이 기간에 이 작업을 해냄으로써 이후의 학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한결 수월히 진행되었다. 또 더 앞에 있을 지원사업 준비라던가, 레지던스 서류를 구비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너무 소중했던, 당신> 영상 작업에 있어서는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이 기간에라도 스토리보드 작업을 완료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혼자 작업을 하다 보니 영상 길이에 비해 제작기간이 무척 긴 편에 속했다. 2년 반동안 차차 내 생각이나 손의 움직임에도 시간의 흐름만큼 미묘한 변화들을 겪어냈다. 그러다 어떨땐 이 부분의 영상이나 씬을 어떤 생각으로 기획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상황도 왕왕 있었다.(확실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동시에 낯선 존재인 것 같다.)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이 닥쳐올 때면 이때 제작한 스토리보드를 펼쳐봤다. 이미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그때의 생각과 의도가 그 속에 스며들어있다. 스토리보드에는 그때의 '내'가 남겨져 있었고 그렇게 멀리서 허우적대던 나는 '그'에게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에 아등바등 제작하느라 애도 많이 먹었지만 이런 길라잡이를 앞세워둔 덕에 무사히 작업을 잘 끝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계획했던 '대표님 꼬드겨 취업하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두 번째 아일랜드 여행은 나름 인상 깊은 추억과 인연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 그래도 섭섭하니까 이때 찍은 아일랜드 사진 하나 투척!!


 다음은 <너무 소중했던, 당신>의 배경과 아트웤에 대해 얘기할 예정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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