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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ul 12. 2015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06

배경 작업: 동자와 토끼가 사는 나라

<너무 소중했던, 당신>에서 묘사되는 공간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1. 사람들의 공간 2. 동자와 토끼가 사는 공간

 

 이러한 설정은, 이 작업을 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이 공간의 설정과 매우 큰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프롤로그> 영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시작되면, 이야기는 두 세계를 교대로 오가며 진행된다. 


동자 세계-> 사람 세계-> 동자 세계-> 사람 세계-> 동자 세계-> 사람 세계-> 동자 세계-> 사람 세계

음.....-_- 헷갈리는군.

지하세계의 배경은 차갑고 무거운 느낌으로 일정한 톤을 유지한다. 최대한 연필선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사람이 사는 세계는 색상과 빛의 표현이 보다 풍부하고 '지하세계'보다 공간의 구성도 훨씬 다양하다.(카페, 방, 야외, 비 오는 거리 등등)










  스토리보드를 끝내고 앞으로의 작업을 계획하며 어떤 방식의 진행이 더 효율적인가 고민을 해야 했다. 실은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의 구애 없이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그러나 이 작업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고, 무엇보다 나는 시간과 돈에 제약이 있는 유학생 신분. 감성적인 끌림에 의해 작업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도록 스스로 종용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좀 더 예쁘게 예쁘게 좋은 에너지만 담아 이 작업을 온전히 그려내지 못해서 이 필름을 꺼내볼 때마다 자주 미안해진다.


 어쨌건, 


 고민 끝에 우선은 동자와 토끼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끝낸 후, '사람들이 사는 세계' 작업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이야기의 순서를 쫓아 두 세계를 왔다 갔다 교대로 작업하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동자와 토끼들이 뛰어다닐 배경 작업에 돌입했다.


 이 세계는 다양한 '물건들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다는(약간은 서늘하고 무서운) 설정이다.  

무덤입니다. 무덤~

   그리고 무덤과 이 세계의 다른 모든 부분을 뒤덮고 있는 건 나뭇가지들이다. 저렇게 둔덕의 형태가 된 것도 쌓인 물건들을 나뭇가지들이 감싸 안으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르골&전축 무덤
엄마가 쓰고 내다버린 그릇들일까? 식기들의 무덤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인 '우체통'무덤
반지무덤. 누군가의 잃어버린 반지들.

이 이외에도, 


낡은 책의 무덤,

(한 짝씩만 있는) 신발들의 무덤, 

(아기들이 잊어먹은) 인형들의 무덤,

오래된 전자제품 무덤- 등등 다양한 무덤들이 등장한다. 여기 사물들의 무덤을 설정할 때 나를 비롯해 주변 지인들의 경험들을 참고로 했다.

 

이런 형태의 공간을 구상하게 된 건, 조금 생뚱 맞지만 경주 덕분이다.

경주라니.

그렇다. 그 경주.

국민 수학여행지. 경주. 


나는 개인적으로 경주를 정말 좋아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가려고 하는 편인데 사실  지난주에도 한차례 다녀왔다.(ㅎㅎ..)


 누군가 경주에 가면 삶과 죽음이 자연스레 함께 보인다 그랬던가.

  경주의 어느 오래된 고분 위에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나 있었다. 누군가 죽어 그곳에 무덤을 세웠더니 어느 날 나무의 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았다. 오랜 시간 쑥쑥 자라 이제 나무는 무덤 위로 멋진 그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스산한 무덤이 누군가 쉴 수 있는 언덕이 된듯한 그 풍경은 나에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게 한 순간이었다. 이에 영감을 얻어 동자와 토끼가 사는 지하세계를 그려내게 되었다.

내 사랑 경주♡


 이런 무덤들 뿐만 아니라 동자와 토끼가 머무는 집. '둥지'도 이곳에 존재한다.

동자와 토끼의 집 '둥지'

처음 만든 이미지는 뭔가 이보다 그로테스크했다.

오우.. 주변에서 이건 좀 무서운 느낌이라 그래서 다른 그림을 그려봤다. 그랬더니..

(컴퓨터 모니터를 찍은 사진이라..화질구지 죄송..)

웬 월드컵 트로피를 그리게 됐다.


이것도 좀 아닌 것 같아 다시..



그래서 최종적으로 만든 이미지는 새의 둥지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게 됐다.

요런 몇몇 과정을 거치면서,
짠. 이런 모양으로 결정했다.

 


 


 *배경을 만드는 과정은 몇몇 변화를 겪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정착됐다.


1) 밑그림을 그린다.

2)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요소들을 카메라 위치에 따라 덩어리 덩어리로 떼어내어 구체화한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 없이 밑그림처럼 모든 요소를 한 장의 그림 안에 욱여넣었다. 그런데 그 경우는 편집을 하기가 번거롭고 거리에 따른 깊이감을 주기도 힘들었다.

 

  3) 이렇게 그려낸 덩어리(?)들을 모아 처음 그렸던 밑그림의 구도대로 배치시킨다.

아오. 징글징글

4)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이미지를 완성한다. 

시계 무덤. '시계'라는 사물의 잊혀짐보다, 시간의 잊혀짐을 말하고 싶었다.


 다른 파트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이 '지하세계'의 배경을 표현함에 있어 연필의 질감을 잘 담아내고자 애썼다. 컬러도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연필들의 터치만으로 화면을 채우고 '설명'해야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나중엔 연필터치가 들어가지 않은 그림은 그림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꽤나 많은 양의 연필을 소모하기도 했거니와 잦은 손앓이를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받은 파스를 오려 붙여 손가락과 팔목에 감고 연필을 쥐었다. 그래도 연필이 기대 오는 곳의 손 마디는 타는듯한  통증이 일었다. 다음번엔 두꺼운 종이를 손가락에 덧대고 파스는 그 종이를 고정하기 위해 감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손에 경련이 왔다. 그럴 때면 그리던 손을 억지로 멈추고 스스로에게 화를 냈다. 

 무식했고 용감했고 또 열정적이었지만 때때로 내게 몹쓸 말과 행동도 많이 했다. 

 

 

 가끔 생각해본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로 돌아가 보다 효율적이고 덜 무식하게 작업할 수 있었을까. 아마 분명히 그렇게 하지 못 했을 거다. 오늘 후회 않기 위해 어제의 나는 열심히 살았으므로, 나는 오늘보다 어제의 나를 더 높이 평가한다. 

넌 참 수고했단다. 덕분에 이렇게 편히 앉아 이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다음 이야기는 <프롤로그 영상의 완성>과 음악 작업에 대해 얘기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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