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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ul 22. 2015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08

C'est la vie, <꽃을 사랑한 어느 새의 이야기>

2011년 6월


여름이 성큼 성큼 다가와 어느덧 학교의 졸업 발표가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졸업 후 다른 학교로 진학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여러 이유로 그 마음은 접었다. 이제 한국에서 2년, 프랑스에서 3년을 보낸 학생의 신분을 벗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저런 서글픈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앞으로의 작업들은 '학생작'이 아닌 '일반작'으로 카테고리가 나뉠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생각이 들자 <너.소.당>을 졸업 전 '마지막 학생작'으로 끝맺지 못한 게 더욱 아쉬워졌다.


이것이 애니메이션 <늪;꽃을 사랑한 어느 새의 이야기(Un oiseau qui aime une fleur)>가 탄생하게 된 배경1.


 배경 2는, <너. 소. 당>의 음악 작업을 도와준 Tim에게 받은 영향 탓이었다.

 재능 많은 Tim도 한 가지 못 견디는 일이 있었으니, 그건 한 프로젝트를 장기간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은 프로젝트들을 짧은 기간에 거쳐  작업한다 했다. 그러다 Tim의 블로그에서 짧은 필름을 하나 보게 됐고, 그 영상이 단 일주일 만에 만든 작업물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일주일..? 고작 일주일 만에 저렇게 재미있는 영상이 나오다니.....!!!!!!!



실제로 오랜 기간 고심해서 만든 영상이 단숨에 만든 영상보다 무조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례로 프랑스 학교에서 2학년 재학 시절, 1년간 고심해서 만든 내 필름은 영화제에서 탈락된 반면 단 5일 만에 만들어진 친구의 영상은 영화제 경쟁부문에 선정되는걸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인생이란 그런거니까...


 처음엔 이런 과정들이 어린 맘에 잘 납득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할수록 점차  어떤 '찰나의 느낌'을 불꽃처럼!! 영상에 담아내는 재주도 하나의 굉장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무튼,


보통 오랜 시간 고심해서 작업하는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며 스스로 실험을 하나 해보고 싶어졌다.


작전명: 일주일간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라.


잘만 된다면  <너.소.당>을 대신할 "내 마지막 학생작"을 만들 수도 있는 거였다. 이야기의 짜임새를 어느 정도 정리한 후 바로 애니메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캐릭터와 배경, 카메라 워킹은 최대한 심플하게. 이야기의 플롯도 단순하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애니메이션의 원동화를 끝내고 이미지를 스캔받았다. 그리고 디지털화한 이미지들의 여백을 다듬었다. 약 1300장의 드로잉이 일련의 과정속에서 빠르게 정리됐다.

아아. 참으로 불꽃같은 작업이었다.


일주일간 이게 왠 사서 고생인가 싶긴 했지만, 왜-살다보면 한번씩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 부치고 싶은 때가 있지 않는가. 내가 딱 그런 시기였던 듯 하다.(어리고 힘이 넘쳤나보다.)


아직 일주일 중 이틀이 남아있었고, 이제 편집만 하면 된다!!!!

야압!!

불꽃편집!!! 우어!!!!!!!!!!!!!

.

.

.

.

.

.

월요일이 됐다.

작업은 아직 마무리 못 했다.

애꿎은 연필과 연필깎이 사진만...끄적끄적.

C'est la vie.(인생이란 그런 거다)

항상 원하고 계획했던 대로 인생이 굴러가면 얼마나 좋겠냐 마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모든 상황이 계획대로 착착 감겨지지 않는다.


 그나마 수요일쯤 편집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일주일프로젝트가 열흘 프로젝트로 급 변경되긴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여태 했던 여러 작업들 중 가장 유쾌하게 기억되는 작업 중 하나다. 어쨌든 짧은 기간 안에도 애니메이션이 나오려면 나온다는 걸  몸소 실천해 볼 수도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이렇게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 '학생작'도 남겼고 말이다 ;)

꽃을 사랑하게 된 새

늪;꽃을 사랑한 어느 새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FSiGJCcaSio


 

 졸업발표는,

  정말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떨긴 처음이다 싶을만큼 떨긴 했지만(다리가 정말 덜덜덜덜; 그 떨림 때문에 목소리까지 절로 구슬퍼졌다.) 어떻게 무사히 넘겼다. 참 섭섭하게도 여긴 별다른 졸업식도 없이 그냥 "안녕~"하고 인사하는 게 끝이었다. 졸업 사진이나 앨범도 없어서 하루 날 잡아 단체 촬영을 했던 게 다였다.

안녕 친구들~~




 6월 말, 학교도 끝났고 향후 어디로 움직일지 내 행보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은 프랑스에서 시작한 <너무 소중했던, 당신>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작업을 이어서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다가, 마침 학교 근처에 La maison des auteurs라는 작가 레지던스가 있어 그곳에 서류를 냈다. 매일 등하굣길에 이곳을 지나쳤는데 설마 졸업 후에 서류를 내게 될 줄은 예상치 못 했다. 이 역시 C'est la vie.


 이 작가 레지던스는 국적에 상관없이 작업하길 희망하는 작가들의 신청을 받는다.(1년에 3번) 그리고 서류심사가 통과되면 작가에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을 마련해주는 곳이다.  


서류 신청을 위해 만든 포트폴리오와 파일. 여태 작업한 영상들을 정리했다.
ANGOULEME에 있는 La maison des auteurs의 외관.


 7월 말에 나온다는 결과는 생각보다 일찍 알 수 있게 됐다.

 다행히 서류는 통과됐고, 나는 여름을 지나 10월부터 이곳에서 <너무 소중했던, 당신>의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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