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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꾸 Jul 07. 2018

아들과 아빠, 모두가 빠져드는 건프라의 마케팅 전략

YOMA Vo2_2018년 5월호_주제 "가정의 달"

얼마 전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다들 보셨나요? 뜻밖에도 이 영화가 개봉한 뒤 국내 최대의 건담 카페에서는 눈물 젖은 게시글들이 매일같이 업로드 되었는데요. 바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퍼스트 건담’이 멋들어지게 등장하여 수많은 건덕(건담덕후)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퍼스트 건담. 모든 건덕들의 가슴을 날뛰게(?) 만든 명장면이었죠! [출처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예고편]

이렇게 세계 최고의 감독이 제작한 영화 속에 건담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한없이 행복해하는 건덕들은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40대 가장들의 어린 아이들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거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멋진 로봇들에 매료되어 ‘건덕 꿈나무’가 되어가고 있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8살의 어린이 건덕부터 40살의 아재 건덕까지, 건담이라는 컨텐츠를 사랑하는 이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모델로 건담을 조립하는 ‘건프라’라는 취미도 함께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만 봐왔던 환상적인 로봇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그 로봇들을 나만의 공간에 전시하는 것은 너무도 짜릿한 일이니까요! 이처럼 건프라는 8살 아들과 40살 아빠 모두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물해주는, ‘가정의 달’에 어울리는 훌륭한 ‘취미’ 중 하나입니다.

세대를 가로지르는 팬덤을 가지고 있는 건담. 건담은 1979년, 일본에서 제작된 에니메이션 속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초창기에는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방영이 종료될 무렵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결국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지 약 4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1979년 TV로 상영된 이후 엄청난 인기로 인해 영화로 개봉한 <기동전사 건담> [출처 : <기동전사 건담>(1981) 영화 포스터]

건담은 그 인기를 '매출'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건담의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를 독점하고 있는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이하 반다이)가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던 2015년, 건담의 IP가 벌어다 준 매출은 767억 엔이었습니다. 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7,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매출입니다.

건담 이외에도 드래곤볼, 원피스, 요괴워치 등 수많은 IP를 가지고 있는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건프라 외에도 게임 서비스로도 유명한 회사입니다. [출처 :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반다이는 어떻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정상을 지키며 거대한 매출을 유지해오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건덕들의 충성심을 휘어잡는 반다이의 건프라 마케팅 전략 3가지에 대해 가볍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단 마음 편히 한 번 들어와 봐!’라는 공통된 메시지로 통하는 각각의 전략들.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볼까요?




#01 건담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  건담에 생명력을 불어 넣다!


대중문화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건담’이라는 애니메이션계은 사실 완구 제조 회사였던 반다이 측에서 ‘장난감’을 팔기 위해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프라모델로 출시되는 수많은 제품들은 다 해당 기체들이 등장하는 ‘원작’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원작이 만화든, 소설이든, 코믹스이든, 아니면 ‘설정집’이든 간에, 건프라로 제작되는 건담들은 항상 어느 작품의 이야기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한낱 로봇 피규어에 불과한 건프라에 이야기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전략은 매우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생명력을 부여받은 건프라는 고객과 긴밀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반다이는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고객들에게 ‘건담 DNA’를 심어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까지 발매된 모든 건담의 에피소드 중에, 고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건담 파일럿 누구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퍼스트건담부터 제타 건담, 뉴건담까지 모두 탑승했던 아무로 레이일 것 같지만, 사실 건담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캐릭터는 단연 샤아 아즈나블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담’이라는 컨텐츠 안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샤아 아즈나블과 그의 공식 모빌슈트들 [출처 : sotsu, sunrise]

샤아는 건담 시리즈의 주인공인 아무로 레이와 대립구도를 이루는 인물입니다. 지구연방의 우주 식민지라 할 수 있는 지온 공국에서 지도자의 아들로 태어난 샤아는 9살 때 정치적인 이유로 부모님을 모두 여의게 됩니다. 그리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친구 ‘샤아’를 죽이고 그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는데요. 처음으로 마음을 줬던 여인이 자기 때문에 전투에서 사망하고, 원래 자신의 부하였던 아무로 레이에게 계속해서 쓰디쓴 패배를 맛보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도전(?)을 이어나가는 인물이 바로 샤아입니다.

이렇게나 얄궂은 운명의 굴레와 그 속에서도 늘 젠틀함을 잃지 않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 덕분에 샤아는 수많은 건덕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건덕들 사이에서 ‘붉은 혜성’, ‘3배 빠른 그 분’이라는 애칭을 가진 샤아는 명확한 악역을 내세우지 않고도 인물들간의 갈등 구조를  전개해 나가는 건담 시리즈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부 팬들에게는 건담 시리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불릴 정도로, 샤아라는 캐릭터는 팬심을 자극하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동전사 건담과 도쿄 이세탄의 콜라보 행사에서 판매되는 샤아 아즈나블의 군복 세트. 3벌 한정으로주문 생산되며, 가격은 천 만 원 정도!  [출처 : 이세탄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샤아 아즈나블의 불운한 스토리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면, 그가 이렇게 많은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샤아라는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스펙타클한 이야기 덕분에 그가 탑승했던 ‘샤아 전용 자쿠’, ‘ 백식’, ‘ 사자비’ 등의  멋진 기체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건덕들의 방에 예쁘게 조립되어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처럼 ‘이야기’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반다이는 이미 오래 전에 에니메이션 제작사인 ‘선라이즈’를 합병하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이들에게 ‘건담 DNA’를 심어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미 두터운 팬층을 확보해놓은 20~40대들을 위해 퍼스트 건담의 계보를 잇는 <우주세기> 애니메이션이나 ‘전쟁’, ‘평화’, ‘정의’ 등을 다룬 <비우주세기> 애니메이션을 지속적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빌드 파이터즈> 애니메이션 시리즈까지 함께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부터 방영하고 있는 <건담 빌드 다이버즈>. 미래의 고객에게 건담 DNA를 심어주기 위한 밝고 가벼운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출처 : 건담 인포]

전통성 있는 오리지널 건담 시리즈,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는 시리즈, 등장하는 기체가 유난히 멋진 시리즈, 유아틱한 작화와 가벼운 스토리가 특징인 시리즈, 원작에서 미처 다루지 않았던 외전 시리즈 등등... 어떤 스토리를 원하든 일단 한 번 발을 들여놓고 나면 다른 시리즈에 눈이 가고, 그렇게 애니메이션에 빠져들다 보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건담을 완벽하게 재현해놓은 건프라에 눈이 가게 됩니다. 건담에 스토리를 입히는 것, 새로운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반다이의 결정적인 전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02 크기, 디테일, 난이도, 나에게 맞는 건프라는 반드시 있다!


반다이가 이야기로 건담 DNA를 심으며 건덕들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기는 하지만, 애니를 접하지 않고 바로 프라모델에 입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저 또한 애니보다는 건담의 외형에 반해 건프라에 입문을 한 케이스인데요. 

일단 건프라의 세계에 발을 들인 고객들을 지속적으로 붙잡아두고 매출을 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합니다. 바로 고객의 성향을 만족시킬 ‘카테고리’를 만들어주는 일인데요. 무슨말이냐면, 똑같이 프라모델을 만들어도 손재주에 자신이 있는 고객과 없는 고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밀조밀한 디테일을 중시하는 고객도 있고, 크기를 중시하는 고객도 있죠.

크기가 작고 디테일도 조금 부족하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조립 난이도가 낮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HG부터, 15~30만원을 호가하지만 크기도 어마어마하고 조립난이도도 높은 PG등급까지. 반다이가 설계해놓은 제품 라인은 고객들의 세분화된 성향을 적극 반영하여 HG, RG, MG, PG라는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등급에서부터 건프라를 시작하던지간에, 일단 건프라를 직접 사서 조립을 하다보면 자신이 선호하는 유형의 등급에 안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등급을 찾아내고 나면 해당 등급에서 발매되는 건프라들을 기호에 따라(기체의 외형,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시리즈, 제품의 평판 등등...) 본격적으로 수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잘하게 나누어 놓아도, 불만을 가진 고객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립 자체가 귀찮거나 조립할 시간이 부족한 고객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의 반다이는 이러한 고객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는 제품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메탈빌드, 메탈콤포짓, 로봇혼 등의 ‘완성품’라인인데요. 당연히 완성품의 가격은 일반 건프라 제품들에 비해 월등히 비싸지만, 그래도 작업시간을 아끼고 더 높은 완성도의 프라모델을 원하는 고객들에게는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메탈빌드 아스트레이 레드프레임 카이 [출처 : 반다이 공식 제품 설명컷]

고객들에게 “괜찮아, 일단 네가 건프라에 관심이 있다면 네가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며 안착할 카테고리는 반드시 있으니까.”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한 반다이의 제품 라인업. 고객들의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동시에 고객들에게 해당 등급의 친밀감과 소속감마저도 제공해주는 탁월한 마케팅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03 똥손부터 금손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흔히 건프라 덕후들은 ‘건프라는 자유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건프라의 디테일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스트레스 받지 않을 만큼만 건프라를 꾸며주자는 뜻인데요. ‘강요는 하지 않되, 고객이 스스로 한 발짝씩 더 깊이 걸어들어오게 만든다’는 반다이의 전략은 이러한 커스터마이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처음 건프라에 입문하는 이들이 제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커스터마이징의 관문은 ‘먹선’입니다. 흔히 먹선은 건프라의 기본이자 필수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조립을 하다보면 조그마한 플라스틱 부품들에 얇은 선으로 패여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를 ‘몰드’라고 합니다. 이러한 몰드에 선을 넣어주는 것을 먹선 작업이라고 하는데요. 먹선을 넣는 것 만으로도 전반적으로 디테일이 확 살아나고 인상이 진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대부분의 건덕들은 필수적으로 해주고 있는 작업입니다.

먹선이 있고 없고의 차이, 느껴지시나요? 오른쪽이 좀 더 디테일하고 인상이 진해보이죠!? 이것이 바로 먹선의 매직...★ [출처 : 달롱넷]

반다이는 먹선을 넣으라고 고객들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먹선을 넣으면 확 예뻐질 수 있는 위치에다 적절하게 몰드를 만들어 놓습니다. ‘먹선 한 번 넣어보지 않을래? 디테일이 확 살아날걸?’이라고 부드럽게 말을 건네는 것이죠.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 먹선에 손을 대는 순간, 마커로 손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부분도색’과 광을 내거나 광을 죽여 더욱 고급져보이게 만들어주는 ‘마감’으로도 쉽게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초보적인 커스터마이징에 익숙해진 건덕들은 도색, 웨더링, 치핑, 개수, LED 매립, 디오라마 제작 등 보다 고난이도의 커스터마이징에도 차례차례 눈을 돌리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색상을 직접 조합해서 색을 입히고, 플라스틱 재질인 건프라를 금속처럼 보이게 만들고, 기존의 설계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조해나가며, 건프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배경까지도 ‘창작’해 나가는 이 모든 커스터마이징의 과정들은 단순히 ‘건프라 커스터마이징’의 범주를 넘어선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컬링팀김은정 선수를 위해 한 팬이 도색한 건프라 [출처 : SBS 뉴스pick]

반다이는 자신의 고객들이 건프라를 가지고 더더욱 자유롭게 창의성을 펼칠 수 있도록 2011년부터 매년 <건프라 빌더즈 월드컵>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일본, 중국, 한국, 홍콩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등 전 세계 16개 국가에서 출품작을 받아 시상을 진행하는 국제적인 행사인데요. 행사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은, ‘너도 나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다이 제품으로 커스터마이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전세계의 건덕들의 마음을 설레게하는 건프라 빌더즈 월드컵 [출처 : 건프라 빌더즈 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건프라는 자유야.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너도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어!”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커스터마이징을 하다 보면 어느새 건프라는 취미가 아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창조의 과정으로, 건덕은 한 명의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건프라가 어떻게 건덕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반다이의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살펴보았는데요. 모든 프라모델들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것, 수많은 제품 카테고리를 통해 고객의 세분화된 니즈를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고객들이 건프라를 만드는 것에 더 깊이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커스터마이징을 독려하는 것 등등...

일단 제품과 컨텐츠를 한 번 접해보면 더더욱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반다이의 마케팅 전략. 건담이라는 강력한 컨텐츠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금형 기술만큼이나 빛나는 반다이만의 경쟁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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