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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인가?" - AI 시대 나에게 묻는다

인간의 본질을 찾는 영적 여정

by 사이에살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거울이다."


프롤로그: 거울 앞에 선 인간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ChatGPT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내가 던진 질문이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나는 질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AI는 내게 답을 주지만, 동시에 나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 누구인가?"


Po-Shen Loh 교수가 던진 화두를 처음 접했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HOW에서 WHY로의 전환, 이는 기술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의식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Po-Shen Loh 교수 대담 영상


질문의 진화: HOW에서 WHY로


"어떻게 SEO를 최적화할까?" "어떻게 더 많은 트래픽을 얻을까?"

블로그를 운영하며 수없이 반복했던 이런 질문들이 갑자기 낡은 것처럼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ChatGPT가 몇 초 만에 완벽한 SEO 최적화 글을 써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기술의 진보에 감탄하기보다는 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HOW 질문은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효율성, 생산성, 최적화. 이 모든 것들이 인공지능의 영역이 되어버린 지금, 인간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동네 작은 카페에서 AI에게 현지 문화에 대한 글을 요청했을 때 받은 서구 중심적 관점의 결과물을 보며 깨달았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개발자의 가치관과 편견이 코드 한 줄 한 줄에 스며들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WHY 질문이다.

"왜 이 AI는 이렇게 답변하는가?"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는가?"

WHY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원인과 목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탐구. 이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창조성의 위기와 존재의 질문


GPT-5가 오랜 블로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보다 더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을 본 순간,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창조성. 그것이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고 믿었던 순간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 충격은 단순한 기술적 위협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깊은 실존적 질문의 시작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론적 질문들이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시 묻고 있다. AI 혁신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느낀 것은, 변화의 속도가 인간의 적응 능력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스타트업들이 AI로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고, 에스토니아의 개발자들이 AI와 협업하며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기존의 제도와 형식으로는 이 변화를 따라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본질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침묵의 언어: Oratio의 의미


어느 고요한 수도원에서 묵상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AI는 수백만 개의 기도문을 분석해 완벽한 기도를 생성할 수 있지만, 진정한 기도의 본질인 '관계'와 '소통'은 알고리즘으로 재현할 수 없다. Oratio, 기도는 단순한 언어적 소통이 아니다. 존재와 존재 간의 만남이다.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며 느낀 것처럼, 진정한 소통은 기술적 완벽함이 아니라 진정성에서 나온다.


AI 시대의 기도는 어떤 모습일까? 스마트폰 알림이 끊임없이 울리는 환경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찾는 것,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본질적 질문을 놓지 않는 것이 현대적 기도의 형태가 아닐까. 침묵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해졌다. AI가 쉴 새 없이 답변을 생성하는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의도적으로 멈추고, 들으며, 성찰하는 것이다. 침묵은 비어있음이 아니라 충만함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AI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의 깊이를 발견한다.


직관의 영역: Meditatio의 깊이


암스테르담의 운하 사진를 바라보며 ChatGPT와 대화를 나누던 중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AI는 패턴을 인식하고 연결하지만, 인간의 묵상은 패턴을 넘어서는 직관과 영감의 영역에 닿는다. 블로그를 쓰며 경험한 최고의 순간들은 모두 묵상에서 나왔다. 논리적 사고를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통찰, 연결되지 않던 것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아하' 모멘트들. 이런 순간들은 계산될 수 없고, 프로그래밍될 수 없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만난 티베트 승려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컴퓨터는 수천 개의 경전을 저장할 수 있지만, 한 줄의 경전도 '깨달을' 수는 없다." 묵상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다.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삶의 경험을 통한 체화된 지혜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개발한 나만의 묵상법이 있다. 각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묵상하고, 서로 다른 문화에서 얻은 깨달음들을 연결하며, 의도적으로 모든 기기를 끄고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 것. 이런 순간들에서 AI가 제공할 수 없는 깊이 있는 통찰이 피어난다.


시험의 시대: Tentatio와 진정성


코로나19로 종교 단체들이 문을 닫았을 때 많은 종교인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제 AI 시대가 되어 더 큰 시험이 시작되었다. 형식과 제도에 의존한 종교는 AI 앞에서 무력해진다.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에서 AI가 생성한 찬송가를 들었을 때의 소름을 잊을 수 없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뭔가 공허했다. 선율은 아름다웠지만 영혼이 없었다. 진정한 영성은 AI가 모방할 수 없는 '생명'의 영역에 있다.


여러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며 느낀 바가 있다. 진정한 영적 리더십은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에서 나온다. AI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문해야 한다:

"내가 가르치는 진리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본질적인가?"

"신도들에게 HOW가 아닌 WHY와 WHAT을 질문하도록 돕고 있는가?"

"형식이 아닌 본질을 추구하는 영성을 체험하고 있는가?"


새로운 영적 실천의 길


AI 시대의 영적 실천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첫째, 비판적 사고력의 훈련이다. AI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지혜, 기술 뒤에 숨은 가치와 편향을 분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깊은 관계성의 추구다. AI가 제공할 수 없는 인간적 따뜻함과 공감, 진정한 공동체와 소통의 경험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셋째, 창조적 영성의 개발이다. 단순 모방이 아닌 창조적 영감의 추구, AI와 협력하되 종속되지 않는 주체적 자세가 필요하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경험한 입장에서, AI 시대의 영성은 경계를 넘나드는 통합적 지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동서양의 지혜를, 고전과 현대를, 기술과 영성을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영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거울이 비춘 진실


AI는 위협이 아니라 거울이다. 인간이 정말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Po-Shen Loh 교수의 통찰처럼, 이제는 HOW가 아닌 WHY와 WHAT의 시대다. 그리고 그 답은 Oratio, Meditatio, Tentatio의 고전적 영적 여정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갈망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정성이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것, 바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영혼의 깊이다!

"그대는 본질을 통찰하는 영성을 추구하고 있는가?"

"AI 시대에 그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인간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기계가 인간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침묵 속에서, 묵상 속에서, 진정성 있는 실천 속에서.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하는 능력이, AI 시대에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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