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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신비주의적 전통 카발라

by 무체


카발라는 유대교의 신비주의적 전통이자 비밀 교리로, 신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교리는 주로 토라와 다른 유대 경전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고, 신성한 지혜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카발라는 단순한 종교 교리가 아니라, 신·인간·우주를 하나의 구조로 이해하려는 포괄적 신비철학이다. 그 중심에는 신의 창조 행위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무한한 존재가 자신을 단계적으로 발산함으로써 유한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자리한다. 이 사상은 유대 신비주의에서 비롯되었지만, 이후 서구의 연금술·헤르메스주의·그노시스주의·신플라톤주의 등 여러 전통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카발라의 뿌리는 기원전 1세기경의 메르카바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에제키엘서에 등장하는 신비적 구절을 해석하며, 인간이 신의 왕좌에 접근하고 천상의 비밀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시작되었다. 카발라의 사상은 구전 전통을 통해 전해졌으며, 그 기원은 고대 유대교의 예언적·신비적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12세기에서 13세기의 스페인과 프로방스 지역에서 문헌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주요 문헌들이 저술되었다.


초기 카발라


《세페르 예치라》(창조의 서)는 초기 카발라 사상의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는 문헌으로 간주된다.


고전 카발라


12~13세기 스페인과 남프랑스의 신비주의자들은 고대 전승을 집대성해 카발라(Kabbalah)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했다. 이 시기의 대표 저작이 《조하르(Zohar, 빛의 서)》이며, 집필자는 모세 데 레온이지만, 전승에 따르면 2세기 랍비 시몬 바 요하이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조하르》는 카발라의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진다.


루리아 카발라


16세기 팔레스타인 사페드 학파의 이삭 루리아가 카발라를 철학적·우주론적 체계로 발전시켰다. 그의 '루리아적 카발라'는 츠임츠움, 쉐비라, 티쿤과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세계의 파괴와 회복, 인간의 역할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교리로 자리 잡았다.



카발라의 신 개념은 '아인 소프(Ein Sof)'로 정의된다. 이는 '무한' 혹은 '끝없는 존재'를 뜻하며, 인간의 언어나 사고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절대적 실재다. 신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발산(Emanation)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이 과정에서 신의 본질은 열 개의 단계로 분화된다. 이 단계들이 바로 '세피로트(Sefirot)'로, 각각은 신의 속성이자 우주 구조의 원리로 작용한다.


아인 소프는 카발라에서 무한하고 알 수 없는 신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 절대적 신성이 유한한 우주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발현하는 10가지 속성 또는 방출을 세피로트라 한다. 세피로트는 생명나무(Etz Chayim)라는 도식으로 표현되며, 우주의 창조 질서와 신성한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낸다.


케테르(Keter): 왕관, 신성한 의지, 존재의 근원


호크마(Chochmah): 지혜, 최초의 관념


비나(Binah): 이해, 최초의 형상화


헤세드(Chesed): 자비, 사랑


게부라(Gevurah): 엄격함, 심판


티페레트(Tiferet): 아름다움, 조화


네차흐(Netzach): 영원, 승리


호드(Hod): 영광, 찬양


예소드(Yesod): 기초, 연결


말쿠트(Malkhut): 왕국, 현세적 실현


창조의 과정과 인간의 역할


이삭 루리아의 교설에 따르면, 창조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츠임츠움(Tzimtzum): 신성한 수축


본래 모든 것을 채우고 있던 아인 소프가 스스로 한 공간을 수축하여 물러남으로써 유한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공허한 공간을 만든 행위다.


쉐비라(Shevirah): 그릇의 파괴


아인 소프의 빛이 수축된 공간으로 흘러들어왔을 때, 이 빛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켈림, Kelim)들이 파괴되고 파편화된 사건이다. 신의 빛이 세상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그릇의 파괴가 일어나며, 신성의 파편이 흩어졌다. 이 파편들이 현세의 악과 물질 세계를 이룬다.


티쿤(Tikkun): 우주적 회복


인간은 미츠보트(계명) 수행과 올바른 행동을 통해 파편 속에 갇힌 신성한 빛의 불꽃(니초초트, Nitzotzot)을 모으고 회복시키는 우주적인 교정 작업을 수행한다. 인간은 티쿤을 통해 이 파편들을 되돌려 신적 조화를 복원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와 선택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우주적 회복의 일부로 간주된다.


신의 임재를 뜻하는 '쉐키나(Shekinah)'는 세속의 세계, 즉 말쿠트에 깃들어 있으며, 인간이 의식의 정화와 깨달음을 통해 그 빛을 되살릴 때 신은 다시 완전해진다.


카발라의 철학적 의미와 궁극적 목표


카발라는 인간을 신의 내적 구조의 일부로 본다. 우주는 신의 내면이 외화된 신체이며, 인간은 그 신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다. 악과 불완전함은 신적 빛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카발라의 목표는 이 단절을 회복하고 신과의 합일로 돌아가는 데 있다. 결국 카발라는 신이 인간 안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인간이 신 안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이는 단순한 신비주의가 아니라 의식의 철학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신성의 언어를 해독함으로써, 인간은 무한한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영적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카발라는 신비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심오한 인식의 체계로 자리한다.

카발라는 유대교 신비주의의 핵심을 이루며, 유대 사상, 의례, 윤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그리스도교 카발라나 헤르메스 카발라와 같은 비유대교적 형태에도 영향을 주어 서양 신비주의와 오컬트 전통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되었다. 특히 생명나무의 도식은 이들 전통에서 우주적 구조와 개인적 영적 경로를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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