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무관한 상상의 영역 종교 이야기
창세기 1장은 창조주가 세상을 어떻게 창조했는지에 관한 시스템 정비 매뉴얼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가 성경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혼돈과 공허, 그리고 암흑의 무질서한 세계에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이 매우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첫 장에 heaven과 heavens가 구분되어 쓰이고 있는 걸 보니 공간 개념이 다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어떤 하늘에 계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earth도 단순한 땅이 아닌 하나의 행성, 지구의 개념으로 보는 게 더 그럴듯하다.
빛과 어둠을 나누다
2절에서 묘사되는 세계는 형태도, 질서도 없는 원초적 상태다. 특히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는 구절은 창조의 신비로운 시작점을 암시한다. 이는 마치 예술가가 빈 캔버스 앞에서 영감을 기다리는 순간과도 같아 보인다.
3절부터 5절에 이르는 빛의 창조는 질서 부여의 첫 단계다. 빛과 어둠의 분리, 그리고 이들에게 '낮'과 '밤'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혼돈에서 질서로 향하는 창조 서사의 핵심이다. 첫째 날의 창조는 이렇게 시간의 구조를 확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신이 둘째 날 한 일은 넓은 공간을 만들어 둘로 나누고 물과 물을 갈라놓게 한 일이다.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누고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게 하니 궁창을 하늘이라 불렀다.
혹자들은 둘째 날 신은 "보시기에 좋았다"는 표현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혼령 및 불가사의한 존재 혹은 악귀, 혹은 만들다 실패한 기형 제품들을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9절과 10절에서 창조주는 하늘 아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마른땅이 드러나게 한다. 여기서 'earth'는 현대적 의미의 '지구'라기보다는 '마른땅' 또는 '육지'를 의미한다. 'dry land(건조한 땅)'라는 표현이 먼저 쓰인 후에 이를 'earth'라고 명명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찬가지로 'seas'라는 복수형은 단일한 바다가 아닌 지구상의 여러 바다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복수형으로 Seas라고 쓴 것으로 보아 아직 휘몰아치는 물결, 파도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아직 구체화된 바다가 아닌 단순한 물들의 모임에 불과한 추상적인 물살로 보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1절에서 땅에 새싹과 초목, 수확할 수 있는 씨앗을 명했다. 열매를 맺는 과일나무 등 종류대로 땅 위에 나게 하였다. 위로 솟아나는 씨앗과 아래로 떨어지는 과일을 구분한 치밀함이 엿보인다. 이것이 훗날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신은 이후 공허한 공간을 수평으로 나누고 수직으로 분리하였다. 씨를 내는 것부터 씨를 만드는 식물을 내는 과정이 일종의 계절별로 적합한 식물을 골고루 세팅한 과정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다. 뭔가 계속 생산해 내는 시스템이 창세기 첫 장의 핵심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종을 집합시키고 그것들에게 번식을 명하게 하였다. 대체 그 많은 종들은 어디서 났으며 어떻게 수집이 가능했길래 그리 체계적으로 정리가 가능했던 걸까.
그래서 신의 눈에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그 시스템을 좋아한 것이지 결실을 보고 좋아한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들이 알아서 시스템대로 작동하게끔 만들어 놓은 점이다.
창세기 1장 4절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있었다. 즉 빛에서 어둠을 분리하였는데, 14절에 가면 빛과 어둠에서 보다 세분된 낮과 밤으로 세분된다. 4절은 하나님이 빛에서 어둠을 분리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으며 14절은 보다 미시적으로 구체적인 빛의 구분이 있다. 이는 별자리나 계절 순환하는 행성 주기 등 디테일한 정리를 한 과정이었다.
어둠과 밤의 정의 또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어둠은 칠흑 그 자체다. 그러나 밤은 그렇지 않다. 밤에는 불빛이 존재한다. 달이 뜨거나 별이 뜨거나 어떤 발광체로 밝힐 수 있다. 그래서 어둠과 밤은 엄연히 다르다.
창세기 1장 16절에서 20절은 넷째 날 해와 달을 만들었고 다섯째 날은 물고기와 새떼를 번성하게 하였다. 여기서 큰 바다 생물은 거대한 바다 고래라는 말도 있고 악어란 말도 있고 용이란 말도 있다. 그냥 바다에 사는 생물 정도로 묘사했어도 될 것을 굳이 거대한 바다 생물이라고 표현하니 의구심이 든다.
20절에는 생물이 나오고 21절에는 생명체가 나온다. 특히 21절에는 거대한 바다 생물과 그 밖의 생물 그리고 생명체를 구분한다. 그러니까 거대한 바다 생물 이외는 물고기나 새와 비슷한 모든 종류의 생명체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미생물, 곤충 등 숨 쉬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한 후 식물을 번성하게 한 후 최초로 거대한 바다 생물을 만들고 후에 인간을 만들었다는 게 되지 않을까?
식물을 종자별로 구축시킨 것처럼 동물도 가축과 짐승을 분류해서 대령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가축과 짐승을 미리 구분 지었던 것인지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순해서 길들이기 쉬운 동물과 야생에서 살기 적합한 짐승들의 혈통 구분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24절은 동물을 종류에 따라 집합시키고 25절은 종류에 따라 만든 것으로 나온다. 이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동안의 패턴을 보면 항상 창조주는 항상 이분법으로 구분해서 세상을 꾸며왔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 육지와 바다, 새싹과 초목, 씨와 열매, 물고기와 새, 그러니 동물도 동물로만 뭉뚱그릴 순 없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은 아니지만 신은 인간에게 확실한 명령을 내렸다. 세상 만물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는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조금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 대목일 수도 있지만 신은 인간에게 약육강식을 허락했다.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을 정리하자면 일단 하나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일이다. 그것도 성인 남녀를 만들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자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든 것이다.
창조주는 삼위일체, 그러니까 특정할 수 없는 형체, 성령인지 하나님의 동료인지 자가분열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창조주는 분명 "우리"라는 표현을 하였고 그것을 모티브로 인간을 창조하였다.
또한, 여태 식물은 특성별로 모으고 동물도 하늘을 날거나 물속에 살거나 등의 특징으로 만들었다면 인간은 유일하게 암수를 구분하였다. 그리고 28절 신이 이들에게 축복과 동시에 책임을 지게 한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신이 남과 여를 만들고 이들에게 축복을 내린 후 통치 권력을 위임하였다. 생육 혹은 생산하고 증식하라는 표현이 인간 아이를 낳는 것보다 마치 기계적인 생산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의혹이 강하게 든다.
신도 절대자 단수인 것 같고 그의 아들 예수도 독신으로 살다 갔다. 그러면서 인간을 창조할 줄도 아는데 왜 굳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서 이들에게 자손을 번성하게 한 걸까?
29절 "너희들"이 아닌 "너에게" 음식으로 할 식물을 준비한 것도 궁금하다.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놨으면 "너희들"이라고 해야 하는데 "너에게"라고 말하니 일단 지구의 통치자는 아담에게만 전권을 준 것이 아닌가?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다 있으니 먹으라 한 것도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마치 우연의 산물이 아닌 치밀한 계획 하에 모든 것을 준비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또 궁금한 점은, 사실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음식을 먹일까 말까를 고민한 순간이 있었다고 보인다. 식물들이며 각종 초목들 그것도 실한 것들만 모아서 열매 맺고 번성하라고 했다. 그것들이 차고 넘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이것들을 인간에게 먹여서 나름의 정화조 역할을 하게 하자 그런 게 아니었을까?
결국 먹고 싸는 행위로 땅을 더욱 기름지고 번성하게 한 거다. 인간에게는 지배 의무도 주었지만 관리 의무도 주었기에 지구의 산물을 경작하고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 힘을 써야 하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입과 항문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본다.
창세기 1장 30절은 짐승이나 날아다니는 새들에게도 푸른 식물을 먹으라고 명한다. 인간은 열매나 과실 같은 것을 먹고 동물들에게는 초록 잎 등을 먹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나 동물 그 누구에게도 살생은 허락하지 않은 것이고 자연의 산물 그대로를 먹게 시스템화했다. 초식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여하튼, 창조주는 짐승, 새, 기어 다니는 동물 등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위해서 초록 식물을 먹으라고 하였다. 자신의 피조물을 본 신의 보시기에 매우 흡족해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여섯 번째 날이었던 것이다.
창조주는 물을 가운데 모으고 마른땅 위에 식물을 번성하게 하는 게 먼저였다. 산소 증가로 인해 일종의 지구 온도를 맞추기 위함이었을까? 혹은 식물이 어떤 유해한, 불필요한 가스를 흡수하고 정화하기 위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식물 없는 지구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생물이 존재할 수도 없고 말이다.
결론은,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닌, 우주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현대 과학의 우주 기원 이론과는 다른 언어와 관점을 사용하지만,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주는 무작위적 사건의 결과가 아닌, 의도와 목적을 가진 창조주의 작품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