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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Aug 14. 2017

엄마라는 두 글자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엄마라고 언제나 엄마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라고 언제나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자라고 누구나 엄마 노릇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 어떤 이들에게는 두렵기만 한 ‘엄마’
엄마라는 보편성이 덮어버린 나를 들여다 볼수록

엄마라는 부담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계획 없이 결혼 한 달 만에 덜컥 임신을 한 뒤 떠오른 걱정.
‘아이가 하나도 예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이를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는 엄마가 되면 어떡하지?’


결벽증에 가깝게 예민한 성격의 사람인지라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극장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마트에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 하고 뛰어 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어울리긴 했지만 나를 향한 관심과 애정, 스킨십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아이고 낳아만 봐라. 지 새끼 안 예뻐하는 애미가 어딨냐.’ 어른들은 입을 모아 말씀하셨지만, 내 몸 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없던 초기에는 뱃속의 아기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저 이 끔찍한 입덧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내가 다시 내 몸의 주인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기다릴 뿐이었지요.



올챙이 알 같던 모습이 젤리 곰이 되고, 해골이 되고, 갈수록 거세지는 태동을 느끼면서 ‘우리 아이’라는 애틋함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내가 정말 엄마가 되는 건가, 이 사람이 아빠가 되는 건가 분명하게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아련한 기대와 설렘에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월 14일,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앞서 만난 우리 아기를 품에 안은 그 날부터 저는 도치맘이 되었어요. 하루 종일 물고 빨고, 쓰다듬고 뽀뽀하고.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가락에 삐쭉 튀어나온 발톱까지 무엇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더라고요.





병원에서 일주일, 조리원에서 2주일, 친정에서 2주일 조리를 하고 처음으로 백화점 나들이를 나섰던 날을 기억해요. 출산 후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간 건 그 날이 처음이었는데,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글쎄, 아이들 머리 위에서 광채가 나더라고요.


초등학생쯤 되는 남자아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는 데 울컥 눈물이 올라왔어요. 저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준 게 너무 고맙고 대견하고, 마냥 기특하고....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되니,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귀하고 소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깨달음 또한 뒤따랐으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신혼집으로 돌아와 독박 육아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저는 극심한 산후 우울증으로 자기가 낳은 아이를 살해한 여자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러고도 인간이냐’ 비난했던 나의 무지와 오만이 부끄러웠습니다.


엄마라고 언제나 엄마다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기 위해서는 수면욕과 식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삼시세끼 풍성한 음식에 둘러 쌓인 우리는 배고픔이 불러오는 광기를 가늠하지 못 해요. 수면욕 역시 마찬가지. 매일 밤 30분 이상 잠들지 못 하고 수도 없이 일어나야 하는 일상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인간에게 잠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대적인 요소인지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 했습니다.

 


50일경부터 시작된 영아 산통은 밤 11시부터 새벽 2-3시까지 그치지 않는 울음으로 계속되었고,  누워서는 단 5분도 자지 않는 극한의 잠투정이 이어졌어요. 오로지 흔들리는 바운서에서만, 정확히 30분씩만 잠을 자는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기도했습니다. ‘제발 저를 여기서 탈출시켜 주세요. 아니 그냥 사라지게 해주세요. 먼지처럼 흔적 없이 그냥 없애주세요!’


도무지 달래지지 않는 아이의 울음을 피해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귀를 틀어막았다가, 아이를 안고 같이 울었다가,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가, 아이를 침대 위에 팽개치듯 내던지고 난 그 날 밤에는 베란다에 주저앉아 오열했습니다. 아이를 해치는 엄마가 되기 전에 나를 없애달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군가를 비난했던 지난 날의 나를 제발 용서해달라고, 지금 여기서 사라질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애원하고 또 애원하고, 매달리고 또 매달리며 사정했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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