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7월이었습니다.
-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그동안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을 한 번씩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그러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럴만했다. 몇십 년을 맨발로 산길을 걷고 있다는 분의 우물 속같이 깊고 청량한 경험을 한 모금 따라 마신 기분이었다. - 7월 15일 일기 한 토막입니다.
올여름부터 저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 맨발로 걸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까지 여덟 번째가 됐습니다.
8월 중순부터는 날씨가 좋지 않았고 9월 들면서 함라산도 제초작업을 하고 있어서 신발을 신고 걸었습니다. 그러니까 꼭 맨발로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건이 되고 마음이 동하면 그 자리에서 신을 벗고 양말도 벗고 훌쩍 맨발로 나섰던 것입니다.
맨발 걷기에 하나 좋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함부로 걷다가는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발을 다치는 것은 정말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선뜻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저 또한 맨발로 걷는 많은 사람들을 봤으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맨발의 그 속도를 ´모기의 속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정말이지, 모기가 잘 붙습니다. 그것도 산에 사는 모기들이라 제법 앙칼집니다.
모기한테 물리면서 마음이 쫑알거립니다.
´신발 신고 빨리 걸으면 이따위 모기쯤이야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
마음은 언제나 묻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묻는 것에 답할 것, 마음이 좋아하는 대화 방식입니다.
아직 초보자인데도 맨발 걷기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모기한테 지기로 했습니다. 모기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를 얻고 하나를 내줘야 한다면 그러기로 하자며 걸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요령이 생겨, 긴 옷을 입고 모기 퇴치제도 뿌렸습니다. 훨씬 편했습니다.
어제는, ´ 가을아, 너는 나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느냐. ´ 그 기분이었습니다.
모처럼 신을 벗고 걸었습니다. 물론 몸에 좋을 것 같으니까, 그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몸에 좋다고 다들 열심한 것은 아닙니다. 책이 좋아도 펼치지 않고, 명상이 좋다고 해도 그뿐이며, 믿음이나 사랑 같은 말은 귓전으로 듣습니다. 가만 보면 몸에 좋은 것들은 멀리서 오고 천천히 오며 나지막히 옵니다. 오래 걸리고 쉽게 눈에 띄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좋은 줄도 모르게 넌지시 손에 쥐어집니다. 받은 줄도 모르고 받는 선물을 훗날 꺼내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고단수입니다. 정말 좋은 것들은 꼭 그렇습니다. 지난날이어도 좋으니까 한번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좋았던 것들이 어떻게 찾아왔던지.
그렇게 걷고 있으면 문장이 찾아옵니다.
어떤 시인은 시가 찾아오면 그때 시를 받아 적는다던 말씀을 하시던데 맨발로 걷는 순간이 그냥 걸을 때보다 그 맛이 진합니다. 왜간장하고 진간장 정도의 차이랄까요.
´애써 신발을 벗고 걷는데 잔디가 부러울까! ´
이 대목은 산길과 산길 사이에 있는 평평한 길에서 멀리 금강이 바라다 보일 때 떠올랐던 문장이었습니다.
지금 믿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지가 됩니까. 빛이 나고 좋은 것입니까.
어제 아침 클라이맥스는 이런 문장이었습니다.
´가을은 시간마저 風葬시키고 기다리는 마음´
내 안과 밖에 있는 것들이 혼연일치로 한 점을 구현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점 같은 순간을 몇 개나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점이 많아지면 선이 되고 선이 길어지면 글이 된다고 믿습니다. 가을에는 그런 점을 얻어다가 뭐라도 하나 지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