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내가 그리고 살았던 궤적
素月, 겨우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이름을 손가락으로 바닥에 써본다. 잠결에도 한 획 한 획 잘 써지는 것을 느끼면서 희고 밝은 것들을 생각했다. 어쩐지 편해졌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눈을 감은 채로 노래가 된 그의 시를 더듬었다. 말을 처음 배운 것처럼 아니면 마지막 말을 하는 것처럼 느리게 느리게,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속으로 흐느끼던 울음이 몸 밖으로 터져 나왔다. 오늘 밤 꿈은 꿈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이 울었다. 꿈에서도 슬픔은 가고 오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가까워지지 않는다. 무엇이 사람을 울게 하는가. 된장국이 나를 울릴 줄이야, 꿈에서도 그게 미안했던지 아니면 사랑스러웠던지, 그것도 아니면 돌아갈 수 없어서 그랬을까. 선명하고 격하게 흔들리면서 울었다. 잠에서 깼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현실에서 엄마가 돌아가신데도 그만큼 실감 나게 울지 못할 것이다. 새벽 2시 10분에 나는 지쳤다.
엄마, 全 마리아, 일흔둘.
살아서 살뜰하게 굴지도 않았고 정이 많아서 엄마를 챙기는 아들도 아니었다. 애틋해서 아무 때나 생각나 전화하는 것도 해본 적이 없다. 멀리, 내가 그리고 살았던 궤적은 엄마하고 멀리, 거기를 살았다. 출세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꿈도 아니었던 그 시절을 어머니의 주검 앞에 초라하게 보여드렸다. 그러니까 울지 않겠나.
죄가 된 것들만 후드득 떨어졌다. 뚝뚝 떨어졌다.
슬픔과 돌이킬 수 없는 엄마의 죽음 앞에 나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내내 엎드려 울먹이다가 결국 소리 내고 말았다. 엄마, 정말 잘못했어요.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201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