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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Aug 08. 2024

지나온 청춘에 보내는 송가

현주건조물방화


지나온 청춘에 보내는 송가 4 / 송경동


광양제철소 3기 공사장

배관공으로 쫓아다니다

잠시 쉴 때였다

10년 된 고물 프레스토를 빼서

폼 잡고 다닐 때였다



읍내 정다방에 미스 오가 왔다

메마른 시골 읍내에 촉촉한 기운이 돌고

볕이 갑자기 쨍쨍해질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뻔질나게 다방을 드나들고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시켜 먹었다



어느 비 오던 날

낙안읍성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사랑고백을 했다

그날 저녁 담장을 넘어

내 품으로 한 마리 고양이처럼

달겨들던 그녀, 열아홉이었다



처음으로 성을 배웠던 시간들

빚이 져서 떠나가던 그녀

다시 빈털떨이가 되어

어느 발전소 공사현장으로 떠나야 했던 나

아름다웠던 시간만을 기억하자고

깨끗이 돌아섰던 우리

돌아보면 아직도 거기 서 있는 그녀



- 아름답고 황홀한 것만이 청춘이었겠는가.

뺑끼칠 하고 먼지투성이에 땀내가 풀풀 날리던 적도 있었다면,

Quizas, Quizas, Quizas 이렇게 꼭 세 번을 반복해야 맛이 나는 청춘이라면,

그 노래 좋다, 그대에게 어울린다.

'나는 백만 번이나 물었지만 다시 한번 묻겠어요.

그래도 당신의 대답은 오로지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이라고 할 뿐이지요.'


쭈그러진 깡통을 발로 차고 새벽길을 휘적거렸던 옛날은 이제 없다.

다시 깡통을 보더라도 그렇게 차버리고 싶더라도 이제 없다.

푸른 공기는 하늘로 다 날아가고 새벽은 벌써 밝아오기만 하는 통에

미스 오, 아직도 거기 서 있는 그녀는, 화장도 지우지 못하는 그녀는 늘 '어쩌면'


피해 당사자 둘 미스 오, 페인트 송 氏, 피의자 청춘은 현주건조물 방화로 인한...



'정말 사랑하고 있다면, 어쩌면이 아니라 '예스'라고 말해주세요.'



* 불을 놓아 자기 또는 타인의 재물 또는 건조물 등을 소훼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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