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냐, 신성모독.
와인과 위스키를 취급하는 바에서 몇 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위치한 이곳에 달뜬 숨을 몰아쉬며 들어서는 이들에게 환영 인사와 함께 심심한 위로를 곁들여 루프탑에 가시려면 한 층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말하는 걸 꽤나 즐기며 일하고 있다. 몹시 고약한 취향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고상한 취향이 존중받는 것만큼이나 고약한 취미 또한 그런대로 (존중 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하고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나는(가끔은) 선의를 짓궂게 건네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곳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술은 사람을 좀 귀엽게 만든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나는 주로 리넨으로 컵을 닦는데 열중하는 듯 보이나 그 집중의 방향은 사실 그들의 대화를 수집하는 데에 7할가량 쏠려있기 때문이다. 3할은 얇은 와인잔을 깨지 않는 데에. 이미 수없이 많은 것을 깨버렸다.
술을 마시는 사람의 몸속을 여행하며 ‘주(drinks)’님께서도 자신을 향유하고 즐겁게 음미하는, 사회적 갑옷이 다소 녹아내려 달뜬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느끼면서 적잖이 귀여우시겠지. 이곳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6층이고 영업 마감 시간이 꽤나 이른 편이라 심하게 만취한 사람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모든 껍질을 벗어던지지는 않되, 목소리 발화기관의 걸쇠 정도만 풀어놓은 상태와 마주한다. 조금 끔찍해지기 전 딱 약간 귀여울 정도만 적당히 관찰할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주(drinks)님의 향유자들 중 몇몇은 지리멸렬한 일상에 불쑥 출연해 장면의 질감을 바꿔놓았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싶어 기록하기로 한다. 바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의 군상은 놀랍도록 다양한 것 같으면서 별로 다양하지 않은데, 느낌표로 남은 장면과 그로부터 비롯된 나의 느낌표를 기록하려고 한다. 비록 순간뿐일지라도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주와 함께 하는 세계의 기록.
나는 좀 기대가 됩니다. 주(drinks)님과 함께. 농담 정도로 받아들여주세요. 신성을 모독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결단코 없으니까요. 중학교 때까지 교회도 매우 열심히 다녔습니다. 종교와는 멀어졌지만 신의 존재는 더욱더 믿고 있고요.
1. <킹스크로스역 류>
1차를 거하게 치르고 방문했는지, 입장부터 목소리 볼륨이 다른 이들보다 현저히 높았고 이미 낯이 불콰하게 발그레한 그룹이 있었다. 루프탑에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신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손님 한분이 한층 아래로 내려와 약간 비틀대며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묻기에 답했고, 그는 바 내부 공간을 느릿하게 돌아다니며 무언가 내면의 걸쇠 하나가 풀린 목소리로 ‘여기가..?’ 하고 다시 묻기에 손으로 가리키며 저-쪽 문 맞은편에 있다 답했고, 잠시 후 돌아온 질문의 밀도와 분위기는 현실 세계에서 좀체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어깨너머로 보내며) “이 문을 열면 되는 건가요?” 그는 물었다. 알코올이 다량 섞인, 심지어 심약하게 까지 들렸던 그의 얕게 떨리던 목소리는 무구한 물음표로 묻고 있었다. 문 너머에 있을 새로운 세계 앞에 다소 격앙된 것처럼 들렸다. 약간 염소 류 소리였달까.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어느 플랫폼 벽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준비물을 덜 챙긴 신입생인 듯.
2. <마지막 고백 류>
테이블을 닦으며 정리하던 중, 마지막 테이블의 소리를 들었다. 글렌피딕 병 앞에 앉은 남자 쪽에서 꺼낸 말이었다. “나 너 좋아하나 봐" 작은 소리로 재잘재잘 대화하던 둘의 사이엔 벽에 홈이 파인 것처럼 잠시 빈칸, 적막이 자리 잡았다.
나는 멀찍이 다른 테이블 위를 훔치며 조심스럽고 자연스레 남자와 함께 앉은 여자의 동태를 살폈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눈을 더없이 휘둥그랗게 뜬 채 애꿎은 테이블만 연신 훔쳤다. ‘이봐! 마감시간 5분 지난 가게에 당신들 밖에 없다고! 지금 고백을 하면 그 고백이 말이냐 방귀냐!! 지금 여기서 뭘 원하냐고!!!’
남자의 말은 매우 잘 들렸지만 여자의 대답은 안타깝게도,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나는 저 극악한 상황에 맞닥뜨린 여자가 애처로웠다. 흡사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뜻밖의 벌떼를 마주한 것 같은 여자의 표정은 나는 이미 목격해 버렸기 때문에. 남자 쪽에서 상태가 조금 먼저 귀여워져 버린 모양이었다. 우리의 친애하는 주(drinks)와 함께 생성된 귀여움은 동시에 끔찍함 또한 내포하고 있다는 게 킬링포인트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좋다’는 마지막 말을 위한 빌드업을 하느라 목이 적잖이 탔으리라. 눈앞에 있는 건 하필 예쁜 사슴이 그려진 알코올 40도의 위스키였고, 주(drinks)님은 가끔 결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기어코 가능하게 한다(혹은 해버린다). 그 결과를 책임지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겠지만. 이때조차 주(drinks)님의 힘을 빌리면 사태는 영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이불킥 정도로는 넘어갈 수 없는 사달이 일어나게 되는 유턴일랑 불가능한 GTX 노선에 몸을 싣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여자의 내면에서 어떤 셔터가 내려가는 찰나를 목도했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그 셔터 너머에 무언가 좋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가느다란 끈을 굳이 붙잡고 있었지만 불시에 그 끈을 누군가 잘라버린 듯 허무해 보였다. 시공간은 역시 중요하다. 자그마치 고백의 시공간이라면 더욱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진짜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예상을 했지만, 사람 일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건 이미 누구나 잘 알 듯싶습니다. 아무쪼록, 두 사람 모두 각각 파이팅! (응원의 기합을 외치고 싶다. 파이팅이란 단어는 정말이지 쓰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 파이팅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란 뭘까, 때로 닳고 닳은 말이야말로 적확한 힘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