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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May 14. 2022

귀촌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이것'

<5화-당신은 누구십니까?>


곡성군민이 된지도 어느덧  달이 지났다. 60, 1440시간, 86400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각적 요소들은 물론 정신적 요소들까지 수많은 것들이 변했다. 갈색  옷을 뒤덮고 있던 대지는 생명들의 태동을 통해 푸르른 옷으로 갈아입었고, 굉장히  서있던 사고관은 현실과 이상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끝이 몽글몽글하게 다듬어지고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던 분이 곡성을 떠나는 바람에 혼자 산지도 어느덧  달이 되었다.


생명의 태동


귀촌을 선택할 때면 삶의 어떤 시점에 있는지부터 가지고 있는 자본의 규모, 어떤 지역에, 어떤 집에,   누군가와 께 할지  인생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전방위적으로 고려해야  것이다. 도시에서도 거주 공간이 반지하인지, 옥탑방인지, 오피스텔인지에 따라 삶의 질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것처럼 농촌지역에서도 어디에 사는가가 정말 중요하다. 현재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있는데 만약 이곳에서도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살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삶의 만족도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마당에서 내려 마시는 드립 커피의 맛은 인생을 달콤하게 해준다.


누군가는 ‘나도 마당 딸린 단독주택에 살면 시골 생활 적응 잘하겠다라고 심드렁할  있다. 내가 직접 겪었던 상황은  질문을  다른 생각의 방향으로 틔웠다. 10 차의 간격을 두고 같이 살던 사람이 있었다.  사람은 곡성에 거주한    만에 떠났고, 나는 2달이 지났다. 요즘 살면서 느낀 만족감  최상에 속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조건(같은 , 비슷한 귀촌 시기)  사람은  다른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다.  차이를 알게 되니 이것이 귀촌 선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을 듯했다.


 바로 ‘성향'.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마지막 날, 이삿짐을 다 싸고 처갓집 양념치킨에 맥주 한 잔 할 때 그는 두 가지 측면이 곡성을 떠나기로 결심한 요인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1. 회사의 방향성과 업무 스타일이 잘 맞지 않다>  

업무가 엄청나게 과다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생각한 방향과 맞지 않고, 또 성격상 서로 대화하고 친목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기업 문화가 아니었다. 문화개발 쪽 회사여서 자유롭게 출퇴근이 진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마주쳐서 교류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설령 만났다 하더라도 업무만을 위해 모인 집단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2. 곡성에서의 삶이 너무 외롭다>     

(1) 연계되는 이야기이다. 혼자 살면 너무 적막할  같아서 셰어하우스를 선택했는데 룸메이트로  같은(?) 사람이 들어왔다. (나로 말하자면 개인적 시간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달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양향성 스타일이다. 특히나 초반에, 회사 적응에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다 보니 집에 와서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농촌도시 특성상 20,30 또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낼 공간과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서울에 살면  마치고 친구들과 만나 술이라도   하면서 회포를 풀고  다른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가족과 친구들과 오직 전화통화로만 연결되어 마치 군대에 있는 것처럼 너무 외롭다고 했다.


 또한 초반 업무의 적합도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졌고 동시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맞지 않아 적응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것과 삶의 여러 고민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 곡성에   3 만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여수로, 서울로 사람들과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러 떠났다.


다행히 엄청난 팀장님 만나 회사에  안착하게 되었다. 일하는 곳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다 보니 삶의 여유가 생기고, 삶의 여유가 생기니 주변의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텃밭 가꾸기를 시작하고,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보통 주변에서 ‘ 시골 동네에 피아노 학원이랑 수영장이 있냐?’ 화들짝 놀라던데 있을   있다. 파리바게트랑 다이소까지 있다.)

두둑 & 바질 페스토를 위해 심은 바질들

 행동들은  나의 성향과 직결될 것이다. 슈퍼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것들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머릿속으로만 ‘ 이거 해야 하는데'라고 하지 않고 필요하면 바로 시작한다. 텃밭 가꾸기 위해서 ‘ 이거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기보다 삽을 들어 흙을 파내고, ‘언젠가 피아노 쳐보고 싶다'라고 기다리기보다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코로나로 닫았던 수영장  열자마자 수영하러 가는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도 항상 사람을 옆에 두는 것보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느슨한 연대' 지향한다. 매일같이 사람에 치이는 것보다 간격을 두고 가끔, 웃으면서, 맛있는  먹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노력을 해야 사람을 만날  있는 시골 생활이  좋은  같다.

 

반대로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좋아하고(특히 밤문화, 이곳은 8시가 되면 웬만한 식당들이 문 닫는다. 정말 말 그대로 해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해지면 하루가 마무리되는 곳이다), 외로움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이 무언가를 찾아서 하는 성향이 아니라면 굉장히 심심한 날들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리틀 포레스트를 즐기기 위해서는 땡볕에 땀 흘리며 밭을 일구어야만 한다. 농촌생활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모든 건 자신의 성향과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의지와 직결되어 있다는 걸 뼈 마디마디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다른 이들보다 시골생활에 조금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살아온 배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배경에 따라 자신의 성향이 만들어지니 일맥상통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가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분이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 한 달에 두 번씩, 주말마다 할머니 댁에 가서 벼농사를 하고, 밤나무 산을 올라 밤을 줍고,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고, 밤이 되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를 배경 삼아 잠을 청했다. 무의식 속에 깔려 있던 그 추억과 경험들이 파리와 뉴욕 그리고 서울을 선망했던 도시 소년을 시골생활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골에 혼자 살면 심심하지 않냐고 왕왕 묻는데  심심하고 싶다. 9to 6 일하고, 텃밭 가꾸고, 매일 아침 2종류의 신문을 읽고, 피아노 학원 다니고, 수영장 가고, 독서하고, 영화 보고, 공부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떤 정보를 찾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무조건 공간을 이동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모든 물자와 사람이 모여있는 중심부에서 떨어지면 삶의 속도는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스마트폰이 있고 유튜브에 접속할 수만 있으면  세계에서 올라오는 지식을 공부하고 습득할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문화생활을 하고 싶으면 1시간 버스 타고  동네 광주에 가거나 집에서 걸어 5 거리에 있는 KTX 타고  2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한다. (정말 기막힌  집이 역세권이다. 그것도 KTX 역세권. 다만 가격이 비싸서   탄다) 어찌 보면 이것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아닐까?

이번 5월 3일 광주에서 방문한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


아직 60  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이기에 이곳을 떠날 때면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로 인해 어떤 성향인지를 질문해보는  단순 귀촌 선택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러 선택들에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어찌 보면 굉장히 외로울  있는 시골생활이지만 새로운  시도하고 배우는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좋은 환경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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