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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Nov 15. 2021

외국에서 남자친구보다 중요한 것

[2021. 9월 넷째주]


방을 구한 후, 텅 빈 방을 어떻게든 내가 살 곳으로 만들어보려고

얼마나 인터넷에서 주문을 해대고, 중고 가게와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렸는지 모른다.

포크, 칼부터 접시, 쟁반, 카페트까지 바리바리 사 날랐다.


그렇게 매트리스와 베개까지 오고, 한숨 돌리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구내염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편도가 붓고, 몸살 난 것 처럼 힘이 없었다.


캠핑장에서 짐 지고 다니면서 고생할 때는,

이만하면 병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 나네, 하고 내 몸이 아주 건강해진 줄 알았다.

이제 와서 보니 정신력으로 버텼나보다.

그리고 드디어 '내 집'에 이사 오자마자,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의 면역체계가 전부 무너진 느낌이다.



보험은 있지만, 막상 의사를 찾아가보려니 또 예약하고 며칠 기다려야 한다.

편도선에 문제가 생기면서 미열도 있는 것 같은데

코로나 시국에 열이 나다니...젠장.

혼자 아픈것도 서러운데

해외에서 살면서 심지어 바로 병원을 갈 수도 없을 때, 제일 한국이 그립다.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가야지 며칠 후에 예약하고 가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야?


백신접종도 완료 했고, 증상도 코로나가 아니지만,

어쨌든 혹시 몰라 코로나 검사를 한번 하고(음성)

최대한 약국 약으로 버텨보기로 했다.



크루드밧에 가서 직원에게 이러이러 설명을 하니

구강 가글 하는 약을 주고, 감기약 같은 것도 하나 줬다.

좋아! 이제 감기약을 먹고 나가 떨어져서 푹 자면 되겠어 했는데,

약이 얼마나 약해 빠진건지 잠이 안온다.

답답하네 정말.


특히나 입병이 아주 사람을 힘들게 한다.

뭐 먹을 때마다 아프고, 그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치과가서

염증이 생긴 곳에 주사를 맞고 싶은데,

한국이었으면 생각할 거리도 안되는 그런 간단한 일을 가지고

여기서 끙끙거려야 하다니...


엎친데 덮친격으로, 생리통으로 며칠간을 또 끙끙 앓고 누워 있다가

조금 컨디션이 나아지나 했는데 

편도선이 가라앉는 대신 코감기가 심하게 와 버렸다.

다행히 완전히 심하게 걸린건 아니라

따끈한 차 마시고 목 싸매고 마스크 쓰고 자면서 버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유를 알수 없는 소화 불량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컨디션이 계속 안 좋으니 정신을 차릴수가 없고 공부든 일이든 효율성도 너무 떨어졌다.

야심차게 끊은 스포츠센터 멤버십도 다 소용없고,

머리를 빗을 때마다 한주먹씩 빠지는 머리카락은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아플 때 누군가 곁에 없는 건 어떻게 보면 외로운 일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남자친구나, 베스트 프렌즈가 있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걱정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상황 보고 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사실 내가 이렇게 최악인 상태일때 찾아 온다고 하는 것도, 보러 온다고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특히나 이렇게 컨디션이 안좋을 때는

차라리 나 혼자 아무도 안 만나고 두문불출 하는게 더 마음이 편한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건 신선한 민트티


내게 남자친구보다 더 필요한 건,

한국 밥이다.

신토불이 한국 밥순이인 내가, 제대로 된 한식을 먹지 못한 것도 벌써 몇주째...

대강 마트에서 산 싸구려 쌀로 압력밥솥도 아닌 싸구려 밥솥으로 한 밥에 대강 야채 고기 등을 덮밥 같이 만들어서 한그릇 요리로 해 먹는 것도 질렸다.

한국 반찬이 먹고 싶다.

찌개가 먹고 싶고, 국밥이 먹고 싶고, 나물이 먹고 싶다!

각종 김치가 먹고 싶다!



나는 꼭 아플때 김치 종류를 하나하나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김장김치, 생김치, 푹 익은 신김치, 파김치, 깻잎김치, 깍두기, 백김치, 무생채, 갓김치, 오이김치...

누가 옆에 없는게 서러운게 아니라,

이 음식들을 못 먹는게 서럽다.

아프고 속 안좋은 것도 왠지 한국 밥이랑 반찬 먹으면 뿅 하고 다 나을것 같은데.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80유로 내고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인 마트에서 한국 쌀부터 김치, 포장된 반찬-고들빼기, 깻잎 통조림 등- 을 시켜버렸다.

물론 여기까지 배송 올때 김치는 푹 익어 버리겠지만, 물론 파는 반찬들은 나의 입맛에 맞지 않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맛이라도 보겠다고 시켰다.


이런 나 자신이 나도 싫다.

왜 한식파인가. 

왜 나는 빵이나 시리얼, 칩, 밀가루 음식만 먹고 실 수 없나.

왜 그놈의 '김치'를 먹어야 하는 것인가!

왜 그러면서 한국을 떠나서 살겠다고 하는 것인가!





목 빠지게 기다리다 3일 후에 쌀과 김치 합쳐서 거의 9kg 넘는 택배가 왔는데,

당연히 우리집까지 배송도 안오고, 근처 배송지에 맡긴 다음에 나보고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도 한국 쌀로 밥 해먹겠다는 일념으로

땀 흘리면서 대형 박스 찾아 와서,

한국 쌀로 밥해서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김치와 밥을 먹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정말!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예전에는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혼자라는 사실에 괜히 더 힘들어한 적이 있다.

이런 시기에 나는 '혼자'고 외롭고 그래서 더 비참하고...


그런데 살아보니 혼자고 둘이고 셋이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몸에 맞는 음식과, 

잘먹고 잘자고 잘싸는(?) 건강함이라는 걸 깨닫는다.



빨리 모든 것이 말끔히 나으면 좋겠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은 시간이 걸리니까.

그나마 컨디션이 이만큼까지라도 회복되어 너무 행복하고 다행이다.

오랫만에 책상에 앉아서 일기도 쓰고,

바깥날씨도 쌀쌀하다는데 행복하고 따뜻한 나의 방에서 맛있는 것도 잔뜩 먹으면서 햄스터처럼

배를 두드리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까지도 나 자신과의 연애를 너무 즐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간 관계가 나 자신과의 관계 아닐까.




소화가 안되는 이유가 쌀인가, 고기인가, 약인가, 이것저것 시도해 봤는데

'물'을 바꿨더니 효과가 있었다.


항상 생수를 사 마시다가,

여기 사람들이 다들 그냥 수돗물 마신다고 해서

나도 뉴질랜드에서 그냥 수돗물 마시기도 했고,

물을 그다지 타지 않는 성향이라 별 생각없이 수돗물을 마셨다.

그런데 석회물의 영향이 확실히 있는지, 끓여먹지 않으면 바로 소화가 안된다.

물 먹고 체하는 건 처음이네.


네덜란드 온 지 한달째,

집 구하고, 크게 앓고, 이제 온전히 적응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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