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시기가 왔다.
사라지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내가 죽고싶고 다 끝내버리고 싶을 때는,
보통 엄마랑 싸웠을 때다.
엄마는 나에게 너무 무겁고 어렵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각종 사고를 치고
경제적 무능은 물론 술과 사고에 휘말린
아빠로 인해 우리 엄마는
나와 아빠, 시어머니인 할머니까지
먹여살리느라 평생을 고군분투해왔다.
기댈 곳 하나도 없이 전쟁처럼 매일을 살았다.
그 결과 나를 그냥 키워낸 것도 아니고
아주 멋지고 훌륭하게 키워내고
우리 가정을 아직도 하나되게 해주었다.
엄마는 나에게 생명의 은인, 영웅 그 이상이다.
내 목숨을 살린 사람이고 뭘로도 갚을 수 없는 존재다.
한편 어려서부터 온갖 사건과 싸움이 익숙했던
나는 엄마와 아빠, 엄마와 할머니의 말다툼에
노출되었고 원망할 곳 없는 화와 짜증이 쌓여있었다.
한마디로 정말 싸가지가 없었고, 나 역시 같이
말을 막 하고 악을 쓰는 걸로 "나 사실 외롭고 무섭고
두려워요. 어른들이 나 좀 안전하게 해줘요"라는
말을 대신해왔다.
나는 엄마가, 매일 전쟁을 치르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고 미안하지만
동시에 미안한 마음을 들게해서 버거웠고
불편하고 억울한 것 같다.
나도 아빠 때문에 힘들었는데,
나도 우리 가족 화목하지 않은 게 아팠는데,
결론적으로 고생은 엄마가 다 한거고
나는 엄마의 열일에 수혜만 받아서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되어버리니까
나는 엄마 앞에서는 억울해서도 안 되고
무한히 감사만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서
또 싸우고 죄책감 들고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딸밖에 못되는 내가 또 싫었다.
나는 하필 또 왜 엄마에게만큼은
다정하지 못한지, 먼저 손내밀지 못하는지,
고생 많았다고 이제 힘 빼고 살아도 된다고
위로해주지 못하는지.
엄마 생일 한번도 제대로 못 챙기고
애교도 없는 딸밖에 못 되는지.
앞으로 내게 기회가 있긴 한건지.
나는 특히 엄마에게만큼은
최악의 인간이고, 배은망덕한 싸가지인 것 같다.
엄마가 정말 불쌍하고, 내가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