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베이샌즈(Marina Bay Sands)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Marina Bay Sands)의 타워 세 동과 그 위에 올려진 340m 길이의 공중정원은 정말 장관이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범선 같은 샌즈 스카이파크(Sands SkyPark)에는 250그루의 나무와 150m 길이의 수영장이 설치돼 있다. 수영장 물속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다운타운의 전경은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하다. 마리나베이샌즈를 두고 건축가들은 건축물의 형태에, 디벨로퍼(developer)들은 성공적인 사업구조에, 행정가들은 건축물을 통한 도시이미지 향상에 관해 말했다. 그리고 한국 언론은 이 건물의 시공사가 한국 건설사라는 점에 주목했다.
63빌딩 연면적(건물 각 층의 바닥 면적을 합한 전체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건축물을 건설하는 일이 어느 하나 쉬울 수는 없겠지만 마리나베이샌즈 건설에서 난코스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땅이었다. 기초를 튼튼하게 만드는 건 모든 공사에서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마리나베이샌즈가 들어선 땅은 2003년 싱가포르 다운타운을 확장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매립지였다. 그러다 보니 무른 토지 때문에 기초공사가 쉽지 않았다.
두 번째는 타워의 형태였다. 총 2,561개 객실이 들어서 있는 타워 세 동은 동쪽과 서쪽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서쪽 부분은 위아래로 곧지만 동쪽 부분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최대 52도). 두 부분은 23층에서 만난다. 대부분의 구조전문가들은 8층 정도에서 서쪽 부분이 쓰러질 것으로 예측했고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모쉐 샤프디(Moshe Safdie)도 원래 설계로 지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쌍용건설은 교량을 건설할 때 주로 사용하는 포스트텐션(Post-tension) 공법을 이용해 원래 설계안대로 공사를 마쳤다.
마지막은 타워 위에 올라간 샌즈 스카이파크다. 축구장 넓이 1.4배 크기의 건물을 지상 200m 높이의 현장에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샌즈 스카이파크는 14개 부분으로 나누어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뒤 현장에서는 크레인으로 올려 조립만 했다.
마리나베이샌즈는 최초 예상했던 사업비의 두 배가 투입됐지만 완공 후 5년 간 싱가포르 GDP(국내총생산)의 0.8%(한화 2조 3천억원)를 증가시켰다. 그래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개발사업의 성공모델로 평가된다. 그럼 마리나베이샌즈는 싱가포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싱가포르는 GDP 기준 전 세계 34위이고 인당 GDP 기준 7위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각각 12위, 30위다. 싱가포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만큼은 선진국이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통제적이며 엄격한 사회 규범을 지닌 국가이기도 하다. 심지어 1988년 싱가포르 정부가 발표한 ‘사회가치관’에서는 개인보다 사회의 질서가 중요하고 가정은 사회의 기초단위이며, 단합의 힘만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민족과 종교 간의 화합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싱가포르에는 사회적 불안을 일으킬 만한 요인들이 많다. 그중 다양한 민족, 종교, 문화가 공존한다는 점은 강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큰 불안 요인이기도 하다. 실제 싱가포르 도심을 걷다 보면 가톨릭 교회, 불교 사찰, 이슬람 사원, 힌두교 사원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도심 주변에는 차이나타운(China Town),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부기스(Bugis)와 같은 특정 인종과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동네가 분포돼 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 경제의 대부분은 인구의 70%를 차지는 화교가 소유하고 있고 실권자인 총리도 화교만 역임해 왔다. 물론 국민투표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지난 5대에 걸친 대통령 임기 중 선출되지 않은 소수인종에게 후보 자격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는 대통령이 국가 통합을 추진하는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법조항이다.
고대 로마제국이 그랬듯 권력자들에게는 국민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빵과 서커스가 필요하다. 26년간 장기 집권하며 지금과 같은 경제 강국을 이룬 리콴유(Lee Kuan Yew) 초대 총리에게도 싱가포르만의 빵과 서커스가 필요했다. 1960년 주택개발청(HDB; Housing and Development Board)을 설립하여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공공주택은 너무나도 비싼 빵이다.
문제는 서커스다. 빵은 의식주와 관련되기 때문에 국민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지만 국민의 강한 결집력을 이끌어 내는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서커스는 빵과는 반대 역할을 한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 집권세력에 반대하는 집단의 결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리콴유 총리에게는 서커스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싱가포르는 1965년에 말레이시아로부터 역사상 유일하게 원하지 않는 독립을 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라는 테두리로 국민을 응집할 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국가’라는 대상은 구체적이지 않고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도 흐릿하다.
리콴유 총리가 고민 끝에 찾은 서커스는 바로 ‘스펙터클(Spectacle)’이었다. 그는 싱가포르의 상징으로 ‘머라이언(Merlion)’을 고안했고 1972년 첫 번째 머라이언상을 싱가포르강 어귀에 세웠다. 현재 마리나베이샌즈와 마주보고 있는 자리다. 머라이언의 기원이 고대 설화에 있고 인어(Mermaid)의 몸통과 사자(Lion)의 머리가 바다와 육지를 상징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머라이언은 그저 놀라운 조합일 뿐이다. 당연히 리콴유 총리가 원했던 국민통합의 상징도 아니다.
머라이언 이후 스펙터클은 두리안을 닮은 공연시설과 블록을 엇갈려 쌓은 듯한 공동주택, 우주선 같은 대법원청사와 공중다리로 연결된 공공주택까지 특색있는 디자인의 건물들이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마리나베이샌즈는 싱가포르의 건축물이 선사하는 스펙터클 그 정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