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충분히 살아낸 오늘 같은 날, 하루를 마치는 저녁이 쓸쓸하다. 이 하루를 누군가 기억해줬으면 싶어 차마 밤을 닫지 못했다.
오늘 이른 아침 작곡도 했고, 거울에 비친 눈빛도 맑았고, 선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었다. 그 짧은 연결에 가슴이 도약을 준비하듯 종종거렸다. 그럼에도 이 좋은 시간을 함께 속삭일 저녁이 없어서. '이 괜찮음' 조차 머물 곳이 없어서 외로움이 조용히 집에 따라왔다.
양말만 겨우 벗은 채 침대 안에 스륵 누웠다. 사실 나는 침대랑 같이 태어난 거 아닐까. 큰맘 먹고 질러버린 매트리스는 작년에 내가 제일 잘한 짓 중 하나인듯 싶다. 매일 밤 나를 견뎌주는 존재니까. 엎어진 채로 반쯤 굴려 천장을 바라본다.
'우리 집엔 바늘 시계가 없어서 다행이야.'
어린 날 새벽에 들리는 째깍 소리는 꼭 보채는 것 같아 마음에 땀이 났다. 어둡고 조용할 때면 귓가에 불안한 심장이 울렸고, 시계 초침 소리와 엇박을 타면 무언가 잘못 굴러가는 삶 같았다. 인생을 시작도 안 해 본 여덟 살부터 그랬다.
이대로 잠에 들면 이빨도 썩고 모공도 울고 자다 깨서 후회하겠지.
내일은 지금보다 하루 더 어른이지만, 시간만 흐른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배워버렸다.
오늘보다 하루 더 삶이 저무는 내일을 사랑할 수 있도록 몸을 일으키기로 했다. 매일 하는 일인데 맨날 버거운 건 뭔가 잘못 설계된 게 아닐까?
내 손길을 기다리는 고양이 두 마리가 한 뼘 거리에서 먼저 밤을 닫았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그저 집사 곁에 누울 여백이 있다면 충분한 밤을.
"우리 오늘 너무 잘했지?"
씻고 돌아온 나에게 내가 묻는다. 침대도 나에게 별 다섯 개를 흔든다.
그래. 이렇게 살아가자. 하루 더 견뎌냈다.
내일은 더 기쁠 거야.
오늘의 내가 돌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