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사이 태평양 어딘가

17년차 미국살이 나의 정체성은 어디쯤인가

by 후이빈

2시 35분. 시간을 확인하며 주섬주섬 선그라스를 챙겨쓰고 차고로 나선다. 해가 강한 남쪽 캘리포니아에서 선그라스는 옷보다도 필수다. 집앞 바로 건너편이 학교라 픽업이 편하다. 3학년인 둘째가 끝날 무렵 누군가가 항상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게 미국문화다. 첫째를 거쳐 둘째가 다니고 있는 이학교 픽업경력만 벌써 4년차. 나처럼 장기간 픽업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각양각색의 엄마들 사이로 매년 새로운 듯한 엄마들의 얼굴이 자연스레 구별되어 보인다. 나름 한국에서 학군좋은 단기거주지로 소문난 이 동네는 한국 새학기가 시작될 1-2월 무렵이면 앳되거나 깔끔한 옷차림의 엄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로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이니 대부분이 늦게 아이를 낳은 나보다 젊고 파릇파릇한 이쁜 애기엄마들이다. 내가 그러 어떻게 아는고 하니, 해가 지날수록 그들만의 특성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변을 많이 탐색하는 듯한 태도와 호기심 어린 눈빛, 많은 아시안들이 있어도 주변의 한국엄마들을 금방 찾아내는 신묘한 능력까지, 나와는 왠지 다르게 느껴진다. 뭐랄까 생생하면서도 떄로는 긴장한 듯한 어떤 아우라라고 할까. 그들의 깔끔하면서도 갖춰입은 패션은 하루종일 쫄쫄이 슬리퍼에 반바지, 질끈 묶은 머리차림으로 다니는 내 차림을 스스로 자각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그들에게는 있다. 아니 그들을 보며 내 머릿속에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내 생각이다. 어 같은 한국사람인데 많이 다르군. 한참이 지나 알게 되었을때 내가 한국사람인 걸 알게되면 놀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주로 나는 아무말 안하거나 3-4년이 된 다른민족(?) 엄마들과 이야기하거나 하기 때문인 것같다.


첫째가 2학년때 한국에서 바로 온 친구가 같은 반으로 배정되어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딸아이가 헬퍼로 지정되었다. 둘은 금방 친해졌고 덩달아 친구엄마와도 언니동생하며 가깝게 지냈는데 2년후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가끔 한국에서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한다. 물론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사이에도 새로운 친구들이 오고 가는 일들이 이어졌다. 새로운 만남은 언제나 설레임을 동반하지만 헤어짐 또한 조금 더 깊은 크기의 아쉬움과 생채기를 남겼다. 매번 새롭게 설레임을 가득 안고 오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아쉬운 작별을 반복하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일종의 감정적 피로감과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쿨한 성격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데 그럴때면 나도 어쩔 수 없는 그냥 감정덩어리의 인간인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헤어짐이 가져오는 감정의 내리막길이 걷기 싫어졌다. 오고가는 서클안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설레임과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동네 슈퍼위치같은 간단한 정보조차 고맙게 신기하게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을 보며 일종의 괴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인 미국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옆에서나마 얻어 느끼고 행복해졌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내년 재산세는 어떻게 될 것이며 이노무 동네는 이제 성전환수술을 부모허락없이도 할 수 있게 한다는 욕을 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거리감은 어쩔 것인가. 정신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그 거리감은 좁힐 시간조차 없어졌다. 그리하여 이 간극은 몇 년동안 좁혀지기는 커녕 점점 벌어져 가는 것이다. 어떨 때는 참 내가 속이 좁은 것도 같고, 어떨 때는 일하랴 애들라이드하랴 교류할 시간이 어디있냐고 변명하기도 하면서 남들이 생각지도 않는 혼자만의 언쟁을 벌이고 있으니 가끔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나이가 이만큼 많고 미국살이 그래도 17년차인데 내가 새롭게 정착하는 걸 도와주는게 응당 맞지 싶다가도,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내가 안그래도 바쁜 와중에 신경써줘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왜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안 준다고 죄책감 비스무레한 것이 느껴진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왜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것인가? 왜 그들과 연결하기를 스스로 꺼려하는 것인가? 갑자기 나는 왜 잊어먹었던 나이를 의식하고 같은 동족(?)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걸까?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친다.


사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나보다 이미 미국을 더 잘 안다. 지금은 어딜 놀러가야 좋은지, 숙소할인은 어떻게 하는게 베스트인지, 아이들한테 가장 인기있는 곳은 어딘지, 얼마를 어떻게 아낄 수 있는지 이미 정보면에서는 아마 나는 그들의 부모님뻘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더 에너지도 넘치고, 외국에 대한 마인드도 더 넓은 것같고, 돈도 어쩌면 내가 그나이때였을 때보다 훨씬 풍족할 것이다. 나는 사실 도와주려도 뭐 도울 것도 없다. 내가 이야기 해줄 수 있는거라곤 살아보니 미국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더라, 사람사는 데는 다 장단이 있더라. 그런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반대로 내가 잠깐이나마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나 또한 한국의 새로운 점에 늘 적응해야 한다. 새로운 카페문화니, 전자문서발급이니 하느 것들은 나를 당황케 하기 충분하고도 남는다. 내가 익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래 떠나있어서 낯설은 가족간의 갈등들, 그안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만의 오지랍문화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내가 직접 그 주인공이 되어서 겪었을 한국경제의 소용돌이들. 그 세세한 디테일들을 친구들과 가족들의 입을 통해 들으면서 나는 한 발 떨어진 옵저버가 되어 가만히 듣는 것이다. 그래 그랬겠다. 나도 뉴스로 봤어. 어머 삼촌이 그 새 보이스피싱을 또 당했단 말이야? 지나간 세월을 열심히 따라잡으려고 노력하지만 한 달이 지나 집에 돌아오면 다시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 또한 내가 태어난 나라에 대한 낯설음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오면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 집에 왔네. 내 집이 여기인가보다 하는..


나란 사람은 변함이 없지만 내가 어디에 속하느냐는 끊임없이 변한다. 속했다가 아니기도 하고 아니다가 속하기도 하니까. 무언가를 규정해야 맘이 놓이는 사람의 속성상 마음속에 일어나는 애매모호한 생각들이 끝을 내야만하는 질문인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 클리어하게 설명해야 속이 편한 수학정의문제 같다고 할까.

역시 아무도 묻지 않는데 스스로 고민하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해 하는 걸 보니 나는 꼰대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