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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의 회사

by 에릭리

회의가 시작됐다.


사장은 이 투자를 할지 말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해 임원들에게 무기명 투표를 하라고 했고 침묵 속에 무기명 투표가 시작 됐다.


개표 결과, 29명은 사장의 의견과 동일하게 투자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개진됐고 딱 한 명의 임원이 이 투자는 이래저래 해서 하지 말자라는 표를 던졌다.


보통은 29표나 사장의 의견에 동감하는 표가 나왔기 때문에 이걸로 투표는 끝난 거라도 모두가 이해했다.

당연히 다음 어젠다를 넘어갈 줄 알았지만 긴 침묵을 깨고 사장이 한 마디를 했다.


누가 반대표를 던졌나요??


사실 그냥 숨 죽이고 있었더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일수도 있었는데 반대표를 던진 임원은 굳이 내가 반대를 했다고 이실직고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뒤 임원은 옳은 소리를 했다고 사장한테 칭찬을 받았을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의견에 대해 추궁을 받았고 급기야 그 뒤로 이상한 부서로 발령을 받기까지 했다. 즉, 한 번 낼 수도 있는 소신의견에 직장생활 하나가 다 무너진 것이다.


그렇다. 아쉽지만 이게 회사생활이다. 권력자에 대한 절대복종만이 살 길이다. 할 수 있은 얘기는 할 수 있는 그런 선진 문화가 있는 회사를 만들자고? 그건 꿈나라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다.


직장에 다니가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문화 때문에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어느 정도 실무자들끼리는 이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런 문화는 더욱 고착화된다. 이미 다가온 AI 시대에 갈 길을 잃은 삼성전자의 위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아니라고 얘기해도 여러 가지 이유들로 진솔한 의견들은 묵살되고 언제나 그랬듯 다른 수단과 방법들로 감춰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결국 매출감소로 이어지고 회사 경쟁력 실추로 이어진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말 잘못된 건 잘 못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는 게 올바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내 목숨이 날아간다. 내 목숨이 중요한가 회사 목숨이 중요한가? 다들 그 답을 알고 있으니 우리는 선배들이 해왔던 과거를 그대로 답습한다.


어쨌든 내가 살아야 될 것 아닌가.

아무리 내 의견을 얘기하고 싶어도 입 닥치고 있어라. 그래야 네가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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