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랑 갱년기랑 싸우면 누가 이겨?'이 우수갯소리를 알게 된 건 내가 막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한창 코로나가 심했던 시절, 개인 적인 힘든 일까지 겹쳐 생전 우울이 뭔지 모르고 살던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병이 생겼었다.
코로나가 약해질 때쯤 나의 우울도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 우울의 잔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둥바둥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아직 갱년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다운되고 도통 기운이 나질 않으니... 엉뚱하게도 조만간 다가올지 모르는 갱년기가 무겁게 겁이 났다.
'이러다가 조만간 폐경에 갱년기 오는 거 아니야? 와, 지금도 이렇게 우울한데 갱년기 오면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서 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거야...'
뭔지도 모르는 '갱년기'라는 것에 상상만으로 이렇게 불안에 떨 수 있다니! 이런 과한 걱정은 우울감과 불안증에서 나온 현상이었겠지만, 당시엔 '갱년기'라는 단어는 나에게 엄청난 공포였다.
50 대 분들과 마주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갱년기가 얼마나 많은 우울을 동반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물어보곤 했다.
대답은 의외로 우울감보다는 몸의 변화가 더 힘들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자녀의 대립'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 나의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들이어서 첫째의 짜증이 조금 늘어난 정도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춘기의 자녀를 키우는 것이 많이 힘들 것이며, 자녀들이 사춘기를 한창 겪을 때 엄마도 갱년기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시기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그러면서 나온 이야기가 '사춘기랑 갱년기랑 싸우면 누가 이겨?'라는 질문이었다.
이 각각의 문제들이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이 '두 문제의 마찰'이라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나에게는 정말 심각하고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래서!! 누가 이기나요??!!"
나는 흥분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물었다.
"자, 승자는...."
두근두근, 짧은 정적 후에 50대 언니는 입을 뗐다.
"갱년기가 이긴다고 합니다!!"
"와, 그렇군요!!"
아직 젊은 엄마들의 작은 감탄이 나왔다.
'아니... 갱년기가 이긴다니... 좋은 것 같지만 사실 전혀 좋은 게 아니잖아?!'
'사춘기의 반항을 갱년기로 눌러버린다'라는 것은 그만큼 갱년기 증상이 많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답을 듣고 나니 나는 더 상심에 빠져버렸었다.
그 이후 3년 정도가 흐른 지금, 우리 아이들은 한창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첫째 딸.
난 지금 '중2병' '중2가 힘들다'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격하게 체험 중이다.
중 2 이후의 육아는 아직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중2가 키우기 제일 힘들다'라는 의견에 0.1프로의 의심이 없다.
둘째 딸은 초6인데, 얌전했던 첫째의 반항 수준을 보아하니... '망나니'라 불리는 둘째의 '중2'는 생각만 해도 지구를 떠나고 싶다.
다행히 나는 갱년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 오히려 3년 전보다 감정의 기복이 많이 안정되고 우울감과 불안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그 세기의 대결의 승자를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갱년기와 사춘기의 대결의 승자는.....?'
'네, 당연하게도 예상하셨듯이, 사춘기 승!!!!!!!!!'
이 결과에 좌절하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사춘기가 갱년기를 이긴다는 것이 사춘기가 세게 온다는 뜻이 아니고 엄마가 사춘기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사랑스러운 자녀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미리 잘 만들어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갱년기를 맞이하자.
그리고 자녀의 사춘기가 왔을 때 온화한 얼굴로 져 주리라... 뒷마당의 잡초처럼 저항 없이 마구 밟혀주리라... 사춘기가 끝나 다시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로 돌아올 때까지 따듯한 밥상을 차리며 버티리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울컥한다. 사춘기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그러나 선배 엄마들의 말에 의하면 끝이 있다고 한다.
젖먹이 둘째와 세 살배기 첫째를 키우던 시절, '도대체 이 육아의 끝은 어디냐!'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때도 끝이 있었으니 이것도 끝이 있으리라.
엄마의 자식걱정은 무덤에서 끝이 난다는 말도 있던데... 이건 또 뭔 소리냐 하겠지만 지금은 잠시 넣어 두는 것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