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할리땡에서 아침을 시작했다.
아이를 매일 차로 학교에 데려다 준지 8년이 넘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요즘은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는 근처에 있는 할리땡으로 바로 출근하기도 한다.
결혼 후 꽤 오랫동안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출근'이라는 단어를 한동안 쓸 일이 없다가 몇 년 전부터 뭔가를 작업하기 위해 카페에 가는 것을 스스로 출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곳은 나의 사무실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지정석이 있다.
매장은 넓지만 평일에는 비교적 한산해서 나의 지정석은 늘 비어있는 편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아 앉은 나는 업무 준비를 시작한다.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연결한다. 만화를 그리기 위한 태블릿도 세팅한다.
콘티나 아이디어를 끄적이는 노트나 작업하다 집중력이 흐려질 때 뇌를 릴랙스 하게 만들기 위한 몇 권의 책들도 노트북 주변에 배치한다.
오늘은 어제 집에서 스케치를 끝낸 만화를 완성하기로 했다.
이 할리땡은 평소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는 손님보다 뭔가의 작업을 위해 오는 1인 손님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손님들을 배려하는 것인지, 항상 들릴 듯 말듯한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거의 정적에 가깝게 고요한 이곳은 작업에 몰두하기 딱이다.
한창 일을 하던 중, 내 나이또래쯤 돼 보이는 여성 둘이 내 옆 창가에 앉았다.
난 귀가 밝은 편이 아니라 식당이나 카페에 가도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 두 여성이 하는 이야기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마도 그 둘이 뿜어내는 어떤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유추해 보건대, 이 둘은 함께 여기에 왔다는 사실에 엄청 들떠있었다. 이제 막 나온 커피의 맛이나, 꾸리꾸리 하지만 이제 여름이 끝난 것 같이 시원한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같은 평범한 대화 속에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묻어났다. 아마 이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꽤 오래전 일이고, 심지어 평일 낮시간에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도 오랜만인 것이 틀림없었다.
추측건대 이 둘은 예전에는 가까웠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각자 다른 직장도 다니고 있어서 이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동창이나 옛 동료 정도 될 것이다.
당연한말이지만 난 카페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오늘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 것이 쓸쓸함이나 외로움을 느껴서는 아니다.
그 둘의 에너지는 평소 혼자 조용히 작업하는 나에게 오랜만에 텐션이 조금 올라가게 해 준 비타민 같은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 혼자 작업할 때는 주변의 왁자지껄한 사람들을 보고, 그 끈끈한 기세에 눌려 나도 모르게 위축됐었다. 내가 갖지 못한 타인의 행복이 나에게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랬었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을 때에는.
지금은 혼자 있는 것이 괜찮다. 타인과 내가 잘 분리된다.
오늘같이 서로의 만남에 반가움과 기쁨이 뿜어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도 속으로 조용히 흐뭇해할 뿐이다.
'생판 남이지만 그들의 기쁨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사람도 옆에 있답니다'라며 말이다.
오늘도 난 만화 작업을 무사히 끝내고 업로드를 완료했다. 그리고 글도 썼다.
옆 테이블의 즐거운 에너지를 받아서 지치지 않고 잘 끝냈다.
요즘의 난 타인과 잘 분리할 수 있고 또 생판 모르는 남과도 이렇게 잘 섞일 수 있다.
그때그때 내가 있어야 할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이런 나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