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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流白浪燦星>(루팡 삼세) 공연 관람후기(後記)

by 한량돈오


가부키 <流白浪燦星>(루팡 삼세) 공연 관람후기(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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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시조 미나미좌 극장


제가 가끔 무모합니다.

가부키를 그냥 공연으로 생각했는데, 언어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잡해서 공부가 많이 필요하네요. 지난 관람전기에서 말씀드린 간략한 영어 설명은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그냥 안내문에 소개하는 정말 간단한 몇 개의 문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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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영화 <국보>에서도 자주 등장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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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사진


내용은 몰라도 가부키의 특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 초보인지라 이리저리 검색하며 인상적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진한 화장(케쇼, 化粧)인데요. 미적·실용적·상징적 이유가 있다고 하네요.


먼저 무대 위에서 얼굴을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서인데요. 가부키 극장은 전통적으로 규모가 크고 조명이 현대처럼 밝지 않아서 멀리서 보는 관객도 배우의 표정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눈·입·눈썹을 강조하는 진한 화장이 필요했습니다.

또 인물의 성격과 역할을 드러내기 위해서인데요. 구마도리(隈取)라는 얼굴 분장 기법에 따르면, 붉은색은 정의, 용기, 강인함을 상징하여 영웅이나 주인공 역입니다. 파란색·남색은 악역, 요괴, 원한(원수) 역이고요. 갈색·검정은 괴력이나 동물적 힘을 상징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전통과 양식미인데요. 가부키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양식화된 연기와 미학을 중시합니다. 때론 과장하고 때론 단순화하는 표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중요한 것은 관객을 압도하는 시각 효과입니다. 무대 위 배우가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극 중 인물·상징적 존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과장된 색과 선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그림(絵)”처럼 보이게 합니다. 저는 이 네 번째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키요에(浮世絵)와 가부키 중 무엇이 먼저인지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가부키가 먼저더라고요. 중간중간 배우가 과시하듯 멈춤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그게 꼭 그림 같았어요. 배우들의 움직임은 그걸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멈춤 장면이 배우의 솔로 연기이면서 하이라이트 구실을 하는 듯했거든요.


두 번째는 가부키의 전통적인 등․퇴장로인 하나미치(花道)였어요. 전통 가부키 공연에서도 그런지 몰라도 이번 공연은 극장 전체를 활용하여 퍼포먼스를 하더군요. 객석에서 불쑥불쑥 배우들이 나타납니다. 하나미치는 극장 객석을 지나 무대로 이어지는 돌출된 통로로, 배우들이 이곳을 통해 등장하고 퇴장하며 연기를 펼쳐 관객에게 극적인 인상을 줍니다. 여기에서 배우들은 멈춰 서서 중요한 연기를 선보이거나, 인기 배우의 등장과 퇴장을 극적으로 연출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배우 뒤에서 활약하는 조력자 구로코(黒子, くろこ)인데요. 전신을 검은색 옷(黒衣)과 두건으로 가려 무대 위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역할은 소품·의상 교체와 장면 전환 지원입니다. 그리고 배우 동작을 보조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배우의 무술 장면이나 공중을 나는 장면을 연기할 때 몸을 지탱하거나 줄을 다루는 거죠. 특수 연출 지원도 하는데요. 갑자기 인물이 사라지거나(즉시 퇴장), 순식간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등 “트릭” 장면을 실현하는 숨은 연출가 역할도 맡습니다.


너무나도 초보적인 내용이지만, 제게는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적어보았습니다.


오늘 얘기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인데요. 교토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후배가 있어서 가부키 공연 후에 만났습니다.

근처 이자카야를 검색했는데, ‘祇園 與市’가 눈에 띄더군요. 리뷰에 드라마로서 영화화까지 된 ‘심야식당’ 분위기라고 해서요. 좌석이 열세 개 정도였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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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손님들이 거의 나가고 우리만 남았을 때, 옆자리 앉아 있던 손님이 가부키 공연 팸플릿을 가지고 있길래 나도 가부키 공연 봤다고 주인장에게 얘기를 했었죠. 그랬더니 우리 말고 네 팀이 있었는데, 모두가 공연을 본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자기네 가게에 배우들이 자주 온다는 거예요.

그런가 보다 하고 거의 일어설 무렵에 단체 손님이 온다고 자리를 옆으로 옮겨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갈 거라고 얘기하면서 일어나는데, 단체 손님들이 들어왔어요. 주인장이 한 사람을 소개하더라고요. 오늘 공연에 참여한 배우 중의 한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졸지에 인사를 그 배우는 일행 중 한 사람에게서 팸플릿을 빌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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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배우 市川猿 弥(이치카와 엔야, いちかわえんや、二代目)였습니다. 무척 유쾌한 사람이었어요. 그 이자카야에 자주 온다고 해서 저도 자주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에 대해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는 「唐句麗屋銀座衛門 (카라쿠 레이야 긴자에몬)」 역입니다. 루랑 일행과 얽히는 악역 계열 인물입니다. 본명은 구스미 요시히로(久住 良浩)입니다. 1967년 8월 15일생이네요. 가문(야호/집안 이름)은 澤瀉屋(오모다카야), 가문 문장은 축차이 이엽 오모다카(軸違いの二ツ葉澤瀉)고요. 첫 무대는 1975년 1월, 가부키좌 「스가와라 전수 수습감(菅原伝授手習鑑)」의 ‘테라코야’ 장면에서 테라코 시로조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여덟 살 때군요.

승명은 1978년 5월, 3대째 이치카와 엔노스케(市川猿之助)의 제자가 되면서 2대째 이치카와 엔야(市川猿弥) 이름을 계승했습니다. 명대(정식 배우 등급) 승급은 1998년 7월, 가부키좌 「의경천본벚(義経千本桜)」 무사시보 벤케이 역입니다. 주요 활동은 전통 가부키뿐 아니라 슈퍼 가부키(スーパー歌舞伎) 등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무대에도 다수 출연했습니다. 가부키 무대를 영상화한 시네마 가부키 작품에도 출연했고요. 도쿄 가부키좌, 오사카 쇼치쿠좌 등에서 꾸준히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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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 시치카와 엔야의 역할은 「唐句麗屋銀座衛門 (카라쿠 레이야 긴자에몬)」 역입니다. 이름에서 가부키 특유의 패러디가 드러난다고 하는데요. “긴자(銀座)”라는 현대적 느낌을 풍기는 동시에, 고전 가부키에 자주 등장하는 “○○衛門”식 인물을 본뜬 캐릭터입니다. 극 중에서는 루팡 일행과 얽히는 악역(빌런) 계열 인물 설정되어, 스토리 전개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엔야는 악역과 코믹을 오가며 무대를 장악하는 배우로 평가받는데, 이 배역에서도 특유의 과장된 몸짓, 대사 전달력으로 관객의 웃음을 이끌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이 많습니다.


2509_minamiza_hb-1748985238514.jpg 리플릿 뒷면


저의 첫 가부키 공연은 일본어를 몰라 다소 답답했지만, 우연히 이자카야에서 공연에 출연한 배우를 만나 무척 재밌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관람료가 비싸서 부담스럽지만, 몇 차례 더 관람하려고 합니다. 좌충우돌하며 일본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여정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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