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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Jun 21. 2017

조지 오웰, 카탈루냐 찬가

정말 나에게 딱 맞았던 세계

이것은 전쟁에 관한 기억이다.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러 갔다가 기자가 아닌 의용군이 된 영국인 작가의 기억이다. 펜 대신 총을 든 덕분에 그는 다른 외신 기자들처럼 스페인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았다. 대신 전쟁에서 돌아와 전쟁의 땅, 카탈루냐에 ‘찬가’를 바친다. 그가 본 전쟁이 참혹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찬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 독특한 작가의 이름은 조지 오웰. [동물농장]과 [1984]의 바로 그 조지 오웰(1903-1950)이다. 그는 왜 굶주림과 추위, 포탄과 총성, 배신과 총상을 안겼던 그 전쟁에 ‘찬가’를 바치는 것일까?     



기이하고 감동적인 혁명에 관한 기억    

 

조지오웰 : http://blog.daum.net/poetlsh/6940927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당이 들어선 이후, 유럽에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혁명보다 반(反)파시즘이 더 위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스페인 내에서 오래전부터 예고되었던 프랑코의 도발은 1936년 5월 현실화 되었다. 식민지에서 귀국한 군인들과 모로코 용병이 파시스트의 주력부대였다. 그들은 전쟁 경험이 풍부했다. 반면에 국내의 정부군은 무력했고 공화정 정부는 전쟁을 이끌 능력이 없었다.      

   

스페인에서 파시스트에 맞서 처음 무장을 시작한 사람들은 해방된 노동자들이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역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대규모 혁명이 일어나 토지와 공장 등이 공공의 것이 되었다. 농노들은 자유로워졌고, 노동자들은 스스로 공장의 주인이 되었다.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위계는 사라졌으며 모두가 평등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해방된 스페인 사람들은 파시즘이 들어서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기자로 스페인 땅을 밟은 조지 오웰이 처음 본 광경은 ‘전쟁’이 아니라 바로 그 ‘혁명’의 순간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상황은 놀랍고 경이로웠다. 난생처음 나는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를 봤다. (…) 굽실거리는 말투는 물론 의례적인 말투마저도 한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 이 모든 것이 내게는 기이하고 감동적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점도 많고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싸워 쟁취할 만한 상황이라는 걸 곧바로 깨달았다. (1장)          

 

외부에서 보도되는 것과 달리 스페인 내전은 단순한 ‘반파시스트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페인 혁명이 이룩한 ‘평등한 세상 지키는 일이었다. 오웰이 가담한 의용군은 위계조직이 아니라 민주조직이었다. 장군부터 신병까지 평등했기에 신병이 장군의 등을 쳐서 담배를 청할 수도 있었다. 그런 군대에게 명령을 따라야 함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토론을 통해 일단 이해만 되면 그들은 ‘동지 ‘동지에게 하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서슴없이 목숨을 걸었다. 장교는 선출직이었다. 명령 체계도 있고 직급도 있었으나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임금을 받고, 똑같은 군복을 입었다. 괴롭힘과 학대는 평등한 동지들 간에 상상할  없는 일이었다. 그토록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자들의 군대가 승리한다는 . 조지 오웰에겐 이보다  매력적인 일이 없었으나 바로  때문에 반파시스트 전쟁이 꼬이기 시작한다.   

    

Death of a loyalist militiaman. Córdoba, September 1936.Magnum Photos



혁명 기억 지우기     


스페인에는 수많은 정파가 있었다. 옛 귀족들부터 부르주아들, 공산주의자들, 드로츠키주의자들, 무정부주의자들까지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제각기 다른 이름을 건 정당을 만들고 제각기 다른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 파시스트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공화파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었으나 혁명에 관해서는 각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조지 오웰이 속했던 통일노동자당은 반파시스트 전쟁을 혁명의 일환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정파들은 바로 그 점을 두려워했고 카탈루냐 지역의 부르주아들은 노동자인양 행세하며 반감을 숨기고 있었다.

호안 미로, 스페인을 도웁시다 https://www.pinterest.co.kr/pin/130745195404047532/

스페인 내부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스페인 혁명이 자국으로 번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소련을 제외하고 어떤 나라도 스페인의 반파시스트 진영을 지원하지 않았고 스페인에서 실재했던 혁명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보도했다. 스탈린이 집권한 소련도 외세의 간섭을 원치 않는 자율적이고 평등한 스페인의 사회주의 혁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혁명에 대한 걱정은 당연히 파시스트와의 전쟁에 악영향을 끼쳤다. 전투력이 뛰어난 노동자 의용군에게는 좋은 무기가 보급되지 않았다. 오웰이 있었던 통일노동자당 의용군에는 걸핏하면 고장 나는 구식 소총 밖에 없었다. 정부군과 공산당은 노동자 군대를 해체해서 정부군 아래에 복속시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농민과 노동자들이 파시스트와 싸우는 이유는 왕과 교회와 부자들이 결탁한 구시대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부와 자본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전선에서는 알 수 없었으나 바르셀로나에서는 공화파 진영 내부의 불안을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3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 전국노동총연맹이 관리하는 전화국이 공격받으면서 시가전이 발발했다. 당시 오웰은 휴가차 바르셀로나에 있다가 시가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선의 참호를 지키던 의용군이 휴가에서 또 보초가 된 것이다. 적도 전선도 분명하지 않은 ‘전쟁 안의 전쟁’은 함부로 총을 쏠 수도 없었다. 정부와 경찰은 침묵했다. 며칠 만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소요 사태는 진정이 되었다. 오웰도 전선으로 복귀했으나 어두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두려움은 적대감을 키우고, 적대감은 상대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생산한다. 스페인 정부와 공산당은 ‘두려운 상대’를 ‘부도덕한 적’으로 규정했다. 통일노동자당을 바르셀로나 시가전의 기획자로 몰면서 ‘파시스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운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시가전은 노동자들이 관리하는 시설인 전화국이 공격받으면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통일 노동자당 사람들은 계속 구속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재판 없이 총살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전선에 있는 통일노동자당의 군대에는 철저히 숨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동료들이 잡혀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전선에서 파시스트와 싸우고 있었다.     



카탈루냐의 추억


공화파 내부의 정세가 그렇게 험악해지고 있을 때 오웰은 부대에서 보초를 서다 파시스트가 쏜 총에 맞는다. 총알이 목을 관통하는 치명상이었고, 그는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생각난 사람은 아내였다. 두 번째는, 되돌아보니 나에게 정말 딱 맞았던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나는 이를 생생하게 느낄 시간이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불운 때문에 화가 났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전투 중도 아니고, 잠시의 부주의로 이 퀴퀴한 참호 구석에서 죽다니!(252)     


이 세계도 좋고, 죽음도 좋으나 멋지게 죽지 못한 것이 좀 속상하다는 오웰. 그 마음 때문인지 오웰은 다시 살아났고 다른 방식으로 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부상병이 되어 돌아온 바르셀로나는 앞서 말했듯 분위기가 험악해져 있었다. 그의 많은 동료들이 이미 감옥에 갇혔거나 총살당했다. 아내는 오웰을 보자마자 그를 대피시켰다.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은 사실이었다. “다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사기”였다. “정말 딱 맞았던 이 세계”가 그를 배신했다.


오웰은 그렇게 도망자 신세가 되어 여러 위기를 넘긴 끝에 간신히 국경을 넘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내와 안전한 곳에서 하루를 보낸 그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정신 나간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둘은 스페인에 돌아가고 싶었다.”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참여한 소녀 :  http://all-that-is-interesting.com/marina-ginesta-spanish-civil-war-1937


자유롭고 평등하고 누구나 당당했던 혁명의 시간, 조준 실력은 형편없지만 언제나 유쾌하고 용감하고 열정이 넘쳤던 동료들이 그리웠다. 그러나 오웰이 그리워 한 것은 비단 통일노동자당과 혁명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었다. 스페인에는 특별한 삶의 태도가 있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마냐나’일 것이다.


마냐나는 스페인 말로 ‘아침’이라는 뜻인데 ‘내일’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기차는 언제나 연착되는 데 그때 “기차가 언제 온대?”라고 물으면 “마냐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도 꼭 마냐나로 연기된다.’ 물론 그 일이 내일 이루어지지 않고 또 마냐나로 미뤄지기 일쑤다. 그러나 정말 가끔은 정확한 시간에 일이 처리되기도 하고 때론 너무 일찍 출발하기도 한다. 계획하고 예측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이 언제 완성될지 모른다. 때문에 때 이른 분노가 없다. 마냐나. 알 수 없는 그 시간은 올 것이다. 삶과 죽음, 부와 가난, 건강과 질병, 전쟁과 평화 그 모든 것이. 그런 태도 때문인지 스페인은 특별하다.  "그들에게서는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관대함, 일종의 고귀함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


"현대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필요로 하는 지독한 효율성이나 일관성을 지닌 스페인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오웰은 그런 땅을 떠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영국에 도착했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배달되는 우유와 신문을 받고, 어렸을 적 알던 모습 그대로 평화로운 마을을 걷는다. 공장이 있는 산업도시는 멀고, 전쟁과 재난과 같은 비참함은 지구 저편에 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두렵다.

     

영국에서 모두가 깊고도 깊은 잠을 자고 있지만, 우리가 폭탄의 굉음으로 깜짝 놀라기 전까지 잠에서 깨지 못할까봐 두려워진다. (14장)     


<동물농장> <1984>처럼 효율성과 일관성이란 이름 아래 인간의 고귀한 자유와 평등이 언제 잠식될지 모른다. 그것 역시 마냐나, 내일일 수도 있고,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잠에서 깨어나 싸우고 있는 카탈루냐야 말로 고귀한 , 찬가를 받을만한 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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