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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승리할 수 없는 이야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법칙은 인간관계에서도 통한다

by 윤지나

3월을 불과 하루 남겨둔 날, 눈 때문에 마당에 막 핀 꽃들이 놀라겠네 하다가 경상도 지역의 괴물 산불 진화에 보탬이 되길 하며 초현실적 풍경을 음미했다. 전지구적 환경에서, 한국적 조건에서, 내가 상당시간을 보내는 조직의 에피소드에서 전에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시기다. 이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 꼽아 보자면 단연 '몰염치'. 몰염치는 진정 이 시대의 단어다.


우리 회사의 독특한 사장 선임 시스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비단 금화의 무게나 가치를 얘기하는 경제학을 넘어서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각 사장 후보자와 그 대리인들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일을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이상한 욕을 먹는 걸 지켜봐야 했다. 자신들의 요구에 확실하게 따르지 않아서인가 너는 누구편인가에 대한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아서인가,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개썅 마이웨이인 애들이 특정 라인에 있는 사람이다, 이미 포섭됐다 등등 믿을 수 없는 음모에 휘감겨 있었다.


걔네는 왜 갑자기 타겟이 됐을까. 사장 선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는 애들이었기 때문이다. 발제 없이 입만 살아서 정치질 하던 애들이 아니라 분명 기사로 승부하는 애들이었는데, 상상도 못할 욕을 먹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내 딴에는 그 후배들이 부당한 얘기를 듣고 있다고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딴 건 모르겠고 걔네는 싸가지 없는 개썅 마이웨이 스타일들이에요. 누구 얘길 들을 애들이 절대 아니죠! 했더니 오, 어느샌가 나도 오염된 사람이 돼 있었다. 윤지나도 누구 라인이래! 조금 선의를 가진 악담은 이거다. 윤지나가 지금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오염된? 쟤네들을 싸고 도는 거래!


더 나아가 음모론의 거대 바퀴는 걔네들이 마침 모두 여기자였다는 데 힌트를 얻어 더 어이 없는 방식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마침 윤지나도 걔네를 싸고 도는 것 같던데, 여기자들이 문제야! 여기자들은 자기 복지만 따지고 이문에만 밝은 집단의 표본으로, 그래서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라는 세계관이 탄생하고야 말았다. 두둥! (이상하게 이런 얘기들과 발화자, 언급자들은 결국 내 귀에 들어온다.)


뭐라고요? 아니 저는 돈 많은데요;; 이 회사에서 제가 금전적 보상?이란 걸 기대할 수 있었단 말인가요??!! 심지어 이 기괴할 정도로 균질적 평가를 받는 여기자 안에는, 회사 내에서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을 법한 악연 세트가 여러 개 있다. 그러니까 걔랑 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연합군이 됐다는 건가요? 뭐라고요??? (여성집단 내 다양성은 원래 잘 인정받기 어렵긴 하다)


세상사 부조리는 디폴트 값인 가운데 이번 사태로 내가 삶의 교훈?을 얻게 된 대목은 억울한 욕을 먹은 후배들의 태도를 보고서다. 화가 나서 부들부들 하다가도 이제 끝났으니 자기는 일이나 열심히 한다고 한다. 일 안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많아서 하는 헛소리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자신 앞에서 직접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억울한 받글이 공공연히 도는 것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라며 어떤 면에서 쿨? 한 태도를 보였다. 세련돼 보인다. 나도 여기에 동조하긴 했다.


반대 편에 촌스럽지만 스트롱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보다 한참 후배를 음해하고 특정 집단을 매도하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은, 원하는 걸 이루는데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몰염치하고 비논리적인 세계관을 짜고 유통시켜도 주위에서는 혀만 찰 뿐 맞서지 않는다. 그런 주장이나 태도에 맞서는 건 쿨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뭐 대단한 거 있어요? 왜들 저래요? 그냥 제가 피할래요, 하다 보니 어느샌가 저런 식의 문제적 태도가 승리의 기준이 돼 버렸다. 피할 수 없는 부당한 의사결정이 언젠가 내리 꽂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적어도 나는 그 화살을 피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도 있다. 재수 없게 부당한 피해자가 되면 그제서야 이 잣만한 회사에서 지랄들이군, 하며 중이 절 떠나듯 회사를 떠날지언정.


일상적인 부조리 가운데 언젠가 일어날 결정적 부조리는 필요한 때 제대로 맞서지 않았던 행동의 연쇄적 결과일 수도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을 몰염치한 사람을 영원히 이길 수가 없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필연적이다. (왠지 요즘 계속 비극적 결말을 믿고 있음. 이럴 거면 왜 태어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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