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Ep.1 첫 걸음

생장피에드뽀흐 - 론세스바예스까지

by Jundos

2025년 4월 23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오면서 아마 비즈니스 그 클래스를 타고 온 사람은 우리뿐이지 않을까? 아빠의 염려와 걱정이 하이퀄리티 서비스로 이어진 여행의 첫발부터 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정말 세심한 사람이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한 우리들은 우리만 등산배낭을 메고 이동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의외로 배낭을 메고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이신 어르신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우리들은 늦은 시간에 다음날 순례길 시작점인 생장피에드뽀흐로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탈 수 있는 몽파르나스 역 근처에 있는 숙소에 묵게 되었다.


숙소...

이 여행을 하는 내내 참 할 말이 많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날 도착한 숙소는 내가 과연 이 값에 이런 숙소에서 자는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숙소는 침대 3개를 기존 2 twin bed인 방에 억지로 꾸겨 넣은 듯해 보였고, 외풍이 부는지 4월 말의 날씨에도 방은 추웠으며, 자그마치 30만 원이나 하는 방이 겨우 이거밖에?라는 생각에 새삼 프랑스 사람들 콧대만큼 물가도 미쳤다 싶었다.


그래도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편하게 왔음에도 그 쥐구멍만 한 호텔에 몸을 뉘이니 절로 어휴~ 하는 탄성이 툭 튀어나왔다. 자존심 상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기 전에 나름 숙소를 미리 알아봤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짧고 오만한 생각인데, 파리에서 묵는 숙소가 아마도 제일 고급진 숙소일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내가 예약 어플로 확인한 호텔들이나 호스텔들은 형편없는 시설처럼 보였었고 시골이라는 인식에 당연히 비위생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파리에서의 숙소가 가장 비위생적이고 별로였던 것 같다(물론 안 좋은 숙소들도 꽤 많았지만 가격대비 파리가 최악...)




다음날,

몽파르나스역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려고 짐을 다 메고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호텔 문을 나섰다. 아내는 우리의 여정을 영상으로 남기려고 오즈모를 가져와서 아침에 출발할 때마다 우리가 정한

YEAH!라는 구호를 외치기로 했다. 참 사랑스러운 존재다.

엄마도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아침마다 카메라 앞에서 Yeah! 를 외치는 우리의 모습이 쌓여가던 모습을 보면 잘 시작했다 하는 생각도 든다.


생장피에드뽀흐(이하 생장)은 바욘이란 역에서 환승을 거쳐 도착한다. 바욘역에 여유롭게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전부 "나 순례길 왔어" 하는 시그널들이 보인다. 등산스틱, 등산화, 등산배낭, 우비 등, 우리만 뭔가 튀는 듯해 보였고 이해할 수 없는 민망함(?), "좀 유난스러워 보이나?" 하는 잡생각은 싹 사라지고 동질감, 소속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은 놓여있는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

열차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갑자기 역사에서 직원이 나와서 소리를 친다.


"오늘 열차 안 옵니다, 버스 타고 가세요."


내 머릿속으로 두 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 일정 첫날부터 꼬이네...

2. 블로그 홍보성을 위한 스토리 전개가 좋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1번 생각이 팽배했을 터, 하지만 초긍정왕 아내와 엄마랑 같이 온 마당에 스스로 재를 뿌리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이 날은 유독 조금은 긍정적이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버스가 너무 허접해서 이게 맞나 생각이 들고 부정적인 생각보단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엉키고 덧칠해져서 검은색의 무(無)의 형태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내를 데리고 "책임자"의 역할을 하러 온 나인데 이 버스를 맞게 탄 건지, 실어 놓은 짐은 멀쩡한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산티아고 순례길 그 첫 거점도시, Saint-Jean-Pied-du-Port. 이름이 너무 길어서 순례자 여권에도 SJPP라고 짧게 표시하기도 하고, 외국인들은 그냥 "생장"이라고만 하지만, 프랑스 남부지역, 바스크 지역에는 Saint-Jean이란 이름으로 시작하는 도시들이 꽤 많다. 순례길 내내 걸으면서 이것저것 의미를 부여해 보고자 찾아본 나의 짧은 가톨릭 지식으로 알기론 Saint-Jean은 성 요한, 프랑스의 성인으로 알고 있다.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들마다 수호성인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우리의 목적지인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Santiago de Compostela. 여기서 산티아고는 Santo, 또는 Saint (성인) 말과 Iacobus라는 라틴어를 스페인식 발음인 Iago으로 변환한 것이다. 영어로는 Saint Jacob 또는 James라고도 한다. 대략 800년경 무어인들과 이베리아 반도에서 일어난 레콩키스타에서 패퇴 중이던 스페인 군대를 도와준 백마 탄 기사가 붉은 십자가를 휘두르고 강림해서 5,000명의 무어인 군대를 무찌르고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 그가 성 야곱이다라는 전설(?)때문에 스페인 전체 수호성인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생장은 마치 순례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전진기지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의 의미와 시간을 투자하여 왔을 이곳, 당연히 비장함과 사명감이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그 나라의 언어를 못 알아들어도 웃는 얼굴 틈틈이로 반짝이는 눈빛들에서 이 길이 주는 근엄함이 느껴졌다.

생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순례자 사무소에 방문하여 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순례자들은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주치는 도시에서 Bar나 레스토랑, 알베르게, 그리고 성당 등등 "Sello"라고 하는 도장을 받을 수 있다.


"이 도장을 그냥 어디서 대충 만들어서 찍어서 산티아고까지 차 타고 가면 되지 않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 도장들은 각각 고유의 지역 특색과 지명을 살려서 최대한 유니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카피하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뿐더러,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이걸 받을 필요는 더더욱 없는 여행길이라 시도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패키지 단체여행으로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도착지 근처에 버스로 내려서 최대한 걷고(10~15km, 때에 따라서 도시에서 도시까지도 걷는) 도장은 가이드가 미리 받아놓는 시스템도 간간이 보였다.


순례자 여권도 다 발급받고, 첫날부터 Jacotrans라는 짐을 A to B 거점까지 옮겨다 주는 서비스를 이용할 계획이던 우리는 처음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해 봤다. 파란 봉투에 현찰을 넣어두면 흔히 "동키 서비스"라 불리는 Jacotrans직원이 현재 묵는 알베르게에서 다음 알베르게까지 옮겨다 준다. 오래된 서비스로 신뢰도가 굉장히 높으며 시간엄수가 생명과도 같다고 하며 요즘엔 순례길을 관광 삼아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경쟁업체가 많아져서 서비스가 더욱더 좋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해 본 첫걸음.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첫 알베르게에서 묵은 하루. 설레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 벅참이 클수록 두려움의 그림자도 커졌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 치지만, 여보랑 엄마는 괜찮을까, 정말 호기롭게 도전하고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온갖 생각들이 또다시 내 머릿속을 검게 각인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넓게 펼쳐진 능선에 듬성듬성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과 가로등이 뛰던 가슴을 가라앉게 해 줬다.


첫 스텝은 가볍지 않았다. 사실 모든 스텝이 그리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뭘 느끼는지, 어떤 감정인지 중요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사실이 뭔가 거칠고 무정한 느낌이지만 단순행위의 반복에 감정을 싣고 움직이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실수도 많아지고,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첫날이라 으쌰으쌰 힘내서 걸어보겠다고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인지 도로 따라 올라가는 언덕길을 한 시간 넘게 올라가도 나름 버틸만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국경은 넘은 지도 모르고 주변 구경을 하다가 지나갔다. 이제 겨우 아침 9시. 걷기 시작한 지 3시간 남짓 지난 시점에서 배가 고픈 우리들은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면서 "도중에 또 가다 보면 마을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만 하고 산을 올라탔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음식과 물을 더 챙겨서 갔었어야 했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는 2시 반까지 Bar 같은 데는 하나도 마주치지 못했고 심지어 유튜브에서 보던 푸드트럭 같은 것도 일절 보이지 않았다.

산속에 길에 접어든 우리들

그렇게 2시간~3시간 정도를 오르막만 오르다 보니 아내는 다리가 풀려서 도중에 계속 쉬어야 했고, 앉을 데 하나 없어서 내 발 위에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오르막이 끝나보였다 싶었을 때 또 오르막이 나왔고, 평지가 나와서 좀 다행이다 싶어 코너를 돌면 또다시 오르막이 나오는 정말 힘든 구간이었다.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물도 식량도 없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빨리 목적지까지 가야 했다.

마지막 언덕이라 생각하고 올라온 언덕 뒤에는 우리가 4~5시간 동안 걸어 올라온 산들의 모습과 저 멀리 도로가 보였다. 이래서 등산을 하는가?라는 생각도 못하고 아스팔트 바닥에 누가 보든 말든 주저앉아버린 아내와 나는 처음에 호기롭게 따라나선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고생하고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속의 한마디를 서로 눈빛으로 주고받고 마지막 힘을 짜내서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원래 비가 오기로 한 날씨는 더웠고 물도 제대로 못 마신 첫 산행은 날 어지럽게 만들었다. 순례자 등록한 화면을 보여주고 여권에 도장을 찍는데 순간 눈이 핑돌더니 뒤로 중심을 잃을 뻔했다. 왠지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나는 다급히 물을 좀 달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가까이 보이는 싱크대에 얼굴을 처박고 물을 냅다 들이켜기 시작했다.

도저히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책임지고 엄마와 아내 짐도 봐줘야 하는데... 그들은 나보다 강했다. 그리고 침착했다. 나 혼자 물에 빠진 생쥐처럼 허우적대며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래, 나부터 잘 챙기자, 하는 마음이 이기심이 아닌 남을 챙기려면 나 스스로부터 챙겨야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이 이해됐다. 내가 씻고 나오는 동안 빨래도 다 맡기러 가고, 식사도 알아봐주고, 하다 못해 동키서비스도 같이 물어봐주는 내 든든한 아군들을 난 왜 믿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 할까? 앞으로 걷는 길에서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질문을 많이 해야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첫 관문, 피레네 산맥을 넘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도착한 날의 감정과 장소와 공기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우리 순례길의 큰 추억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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