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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May 17. 2018

예기치 않게 태어난 메뉴

  사시사철 변함없는 잿빛 색깔과 성냥갑 모양의 건물들로 꽉 찬 도회지와는 달리, 시골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가 있다. 겨울철,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던 들판은 농부들의 땀방울로 인해 어느새 녹색의 물감으로 채색되고 있다. 계절의 여왕답게 산과 들에는 싱그러운 잎사귀들과 하얀 아카시아 꽃들이 수를 놓기 시작한다.


  「붉은 수수밭」의 배경인 만주 벌판처럼 황톳빛 속살을 드러낸 밭고랑 너머로 이팝나무 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예로부터 이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꽃이 쌀밥(이밥)처럼 하얗고 소담스럽게 피어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쌀농사를 지으면서도 쌀밥은커녕 보리밥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던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은 나의 뒤틀린 센티멘털리즘인가? 쌀이 남아돌아 쌀값이 폭락하고, 농촌 사람들도 영양과잉으로 만삭의 임산부처럼 아랫배가 불거져 나온 현실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에 봄비까지 자주 내려 텃밭의 작물들의 자라나는 속도가 범상치 않다. 집 앞, 양지바른 텃밭의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부추도 알맞은 생육 환경에서 싱싱하게 자라났다. 예전에 어머님 손에 의해 뒤뜰에서 재배되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지금은 찾기 힘든 토종 부추로써 시중의 개량종보다 잎이 가늘고 연한 것이 특징이다. 토종 부추로 나물이나 김치를 요리하면 훨씬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수확량이 적고 병충해에 약하다는 단점은 각오해야 한다.


  부추는 뿌리를 캐서 다른 곳에 옮겨 심어도 잘 자라난다. 부추나 난초처럼 뿌리가 굵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작물들은 대체로 생존력이 강하다. 뿌리에 많은 수분이나 영양분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강한 육체적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체의 뿌리에 해당하는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 정신적 뿌리라 할 수 있는 올바른 가치관이 가슴속에 확고히 자리 잡은 사람은 세파의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산도 좋고 물도 맑은 곳을 찾기 힘들 듯이, 부추는 생존능력은 뛰어난 반면 번식력은 약하다. 이 녀석은 뿌리로 번식하지는 못하며, 따라서 개체수를 늘리려면 가을에 씨앗을 받아 두었다가 봄에 씨를 뿌려야 한다. 그러나 부추 종자는 발아가 어려워 씨를 뿌려도 좀처럼 싹이 돋아나지 않는다.


  이식 당시 여남은 포기에 지나지 않은 이 귀한 토종 부추를 번식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부추와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고, 주위의 농사 베테랑들에게 문의하여 개체수를 늘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이 부추는 시골집을 방문할 때 푸짐하고도 귀중한 식재료를 제공한다. 특히 여름철 시원한 물국수의 고명으로 이만한 재료가 없다.


  

  자급자족 목적으로 텃밭을 경작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과오 중 하나는 농작물을 너무 많이 심는 것이다. 특히 처음으로 텃밭을 경작하는 초보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한다. 텃밭에 주로 심는 상추의 경우 10포기, 고추, 오이, 가지, 호박, 방울토마토 등은 두 포기만 해도 한 가족의 먹거리로 충분하다.  피땀 흘려 가꾸고 수확한 농작물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지만 이를 달갑잖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자기가 재배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린다는 보람으로 가득 차야 할 마음 한구석에 필요 이상으로 생산한 농작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먹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라져 가는 토종 부추를 증식시켜야겠다는 나의 욕심이 결국 화근이 되어 돌아왔다. 부추 수확량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하게 된 것이다. 남는 부추로 나물도 무치고 김치도 담그기도 했지만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부추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몇 년에 걸쳐 애써 키운 부추를 파낼 정도의 결단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결국 나는 부추의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욕심과 집착은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암적인 존재이다. 지나친 소유욕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속적인 것에 얽매이게 하고 마음의 여유를 잃게 만든다. 지금은 절판된 「무소유」라는 글에서, 법정 스님은 지인으로부터 얻은 난초를 소유하고 거기에 집착함으로써 겪게 되는 불편함과 정신적 압박감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 산철(승가의 유행기)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을 못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화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결국 스님은 애지중지하던 난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리는 「무소유」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나는 스님처럼 법력(法力)이 높은 것도 아니고 정신적, 육체적 수행을 한 적도 없는 일개 중생일 따름이다. 무소유를 실천할 정도의 수양도 쌓지 못했다. 이러한 범인(凡人)이 소유의 집착으로부터 다소나마 벗어나가 위한 수단을 강구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부추장아찌였다. 장아찌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 상하기 쉬운 음식들을 오랜 기간 저장하기 위해 개발된 요리법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간장게장을 담글 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부추장아찌 만들기에 도전하였다. 게장이나 장아찌 담그기의 핵심은 재료에 부은 간장을 하루 이틀 후 따라내어 센 불에 달인 후 다시 붓는 것이라는 정도는 어깨너머로 배워 알고 있다. 어머니는 이러한 과정을 서너 번 했던 것 같다. 우선 부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후 플라스틱 용기에 가지런히 담았다. 시골집에 있는 장아찌 관련 재료는 주재료인 부추 외에는 간장과 매실청뿐이다. 다른 재료 무엇이 들어가는지도 모를뿐더러, 재료를 사러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에 우선 두 가지 재료로 부추장아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 두 용액을 섞은 혼합액에 물을 부어 간을 맞춘 다음 가스불로 팔팔 끓였다. 식은 혼합액을 부추 용기에 붓고 상온에 하루 동안 보관하였다.


  하루에 한 번씩, 사흘에 걸쳐 간장 용액을 달여 붓기를 반복하였다. 마지막 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용기의 뚜껑을 열고 생애 처음, 그것도 즉흥적으로 탄생시킨 부추장아찌의 맛을 보았다. 조금 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부추의 아삭아삭한 식감에 장아찌의 깔끔한 뒷맛은 부추 나물이나 부추김치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이었다. 이 음식은 장기간 보관도 가능하니 금상첨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같은 필부(匹夫)들이 무소유라는 높은 경지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예정에도 없이 태어난 부추장아찌는 남아도는 부추로 인한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버렸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미풍이 손바닥만 한 부추 밭에도 풀파도를 만들어 내었다. 날씬하게 자란 부추가 따뜻한 봄바람에 일렁거린다. 부추를 향한 나의 눈길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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