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혼자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 좀 무모하고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나는 그간 다니던 직장에서 곧 은퇴를 하게 될 테고 일 하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정년퇴임 후 무얼하며 지내야 할지 막막하였고, 차제에 혼자서 용감하게 세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여행 혼자 할 수 있구나, 아니 혼자 하는 게 훨씬 좋구나 확인을 했다는 것이다. 그전에 단체관광으로 다닌 곳이 엄청나게 많지만 여행의 맛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행선지는 가까운 방콕으로 결정하였다. 그전에 치앙마이를 가보긴 했지만 정작 방콕에는 가보지 못한 것도 있고 적지 않은 시간동안 활동한 사진 SNS에서 서로 사진 이야기를 주고받던 온라인 친구 몇몇이 방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에 친구가 있어서 등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별게 아니어서 실제로 그중 한명만 저녁 식사 같이 하고(밥값도 내가 냈다) 후일 기약 없이 헤어졌기 때문에 친구가 있어서 거기 간다는 말은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SNS 친구라는 것이 우정이나 신뢰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기에 상황이 바뀌고 타산이 안맞으면 언제라도 연락이 끊기거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는 사이임을 이번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어쨌거나 혼자서 비행기 타고(쫌 비싸도 국적기 이용) 방콕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 후(시간 엄청 걸림) 유심 구매하고 예약해놓은 호텔로 이동하였다. 혼자 찾아가는 길이라 택시를 이용했지만 나중에 보니 지하철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위치였다. 언제 또 다시 올지 몰라 귀국 시에는 실제로 지하철을 이용해 공항까지 가는 연습을 해보았다. 몇번 갈아 타지만 별로 어려울 게 없는 교통편이었다. 다음에 오면 대중교통만으로 움직여도 되겠구나 자신감이 생겼고 항상 길이 막히는 시내에서 오히려 대중교통이 더 나은 수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방콕 시내는 연일 뿌옇게 매연이 가득한 하늘과 공기로 다가와서 낯선 여행객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유명 관광지들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옛 궁전과 사원, 방콕 인근 유적지, 시내에 있는 세계 배낭족들의 메카 등 예술적 가치가 넘쳐나는 곳이 즐비했을 뿐 아니라 밤이 되면 근사한 식당, 야경으로 유명한 고급 바, 사람 사는 냄새 흠뻑 느낄 수 있는 야시장 등 화려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수도 없이 많았다. 물류수단으로서 보다는 관광사업에 최적화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방콕 시내를 관통하는 짜오프라야 강은 우리 한강이 얼마나 쓸모 없이 방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의 맛은 여러가지이다. 첫째, 모든 일정을 혼자서 알아보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다. 비행기, 호텔은 물론이고 관광지, 식당, 유흥 등 사전에 어느 정도는 알아보고 떠나게 되고 도착해서도 끊임없이 정보탐색을 하게 되는 만큼 하루하루 일정을 잘 소화하든 예측치 못한 사정으로 그날 일정을 망치게 되든 모두 내 머리 속에 고스란이 남아 있게 된다.
둘째, 자신이 알아서 여기저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교통이나 위치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단체관광의 경우 각각의 방문지에 가서 현장을 느낄 수 있지만 가는 과정이나 필요한 사항은 모두 생략이 된다. 내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면서 오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관광이 마쳐진다.
셋째, 저녁 시간에도 호텔에 있지 않고 시내로 나와 쇼핑을 하든 바를 가든 하기 때문에 나이트 라이프를 경험할 수 있다. 단체관광은 정해진 버스나 밴 등으로 그날그날 일정을 소화하고 식사하는 곳, 쇼핑하는 곳도 미리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일정이 끝나면 숙소에 내려주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움직일 일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어디를 나가고 싶어도 교통편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숙소에 머무르게 된다.
넷째, 낮이든 밤이든 길을 묻거나 물건을 사거나 식사 주문을 하거나 이용 방법을 물어보거나 등등 자연스럽게 현지인과 접촉할 수 밖에 없다. 단체관광에서는 여행사와 가이드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주기 때문에 현지 사람과 접촉을 할 일이 없다. 방콕 사람들이 무지하게 친절하다거나 대부분 영어에 능통하다거나 하는 사실을 단체관광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나는 이번 경험을 계기로 자유 여행의 좋은 점을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물론 어려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알아볼 게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늘 안심이 안되어 걱정을 하게 되며 혼자 다니다 보면 이야기 상대가 없어서 외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어려운 점에 비해 좋은 점이 더 크다고 판단하여 앞으로 혼자 여행을 즐길 생각이다. 또 나이먹은 사람도 얼마든지 나 홀로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여기저기 권유할 생각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일정이 잘 맞지 않고 같이 다니는 동안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항상 단체여행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럴 때 언제라도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나고 여행 중에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시간도, 장소도, 메뉴도 다 내가 결정하는 여행을 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