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용열 May 18. 2023

'기업이란 무엇인가' #2-2

시장과 기업 어떻게 다른가

  예를 들어 중간부품의 수요자가 공급자에 대해 품질이나 사양을 꼼꼼하게 요구하는 경우 시장거래에서라면 가격이나 수량과 같은 조건만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반면 기업내에서라면 명령이나 지시에 의해 필요한 부품을 조달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갑자기 시장수요가 많아져서 부품공급자에게 밤샘작업을 요구하는 경우 시장거래에서는 무리가 통하지 않지만 기업내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주문에 맞추는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

  둘째 필요한 부품을 타기업에서 사다쓰지 않고 직접 만들게 되면 정보누출을 방지할 수 있다. 그 부품을 생산하는데 요구되는 원료, 기술, 디자인, 제조공법 등 각종 노하우와 정보가 해당기업의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때 직접 만들어 쓰면 아무 문제 없지만 외부 기업에 주문해서 조달하게 되면 관련된 정보가 누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단 정보가 누출됨으로써 지금까지의 경쟁우위를 상실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고 있다.

  셋째 필요한 부품을 다른 데서 사다쓰지 않고 직접 만들어 쓰는 경우 이른바 거래비용의 절감효과가 있을 수 있다. 거래비용이란 거래를 원활히 수행하는 데 따르는 각종 비용을 말하는데, 거래비용경제학(TCE: transaction cost economics)에서는 거래비용의 개념을 가지고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거래비용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할 기회를 갖기로 하고 여기서는 거래상대방을 찾는데 소요되는 탐색비용, 거래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데 드는 계약비용, 계약에 정해진대로 거래를 하는지 관찰하는데 드는 감시비용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로 한다.     

  시장에서 일회성의 거래를 하는 당사자간에 거래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기업내에서는 당사자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에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실제로 한번 보고 말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경우와 오랜 기간 같이 지내야 할 사람끼리 거래를 하는 경우 거래 자체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비용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중간투입의 재화나 서비스를 기업에서 자체 생산하게 되면 타기업에서 구입하는 경우에 비해 몇가지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대량생산에 따르는 규모의 경제성을 실현할 수 없다. 규모의 경제성이란 생산되는 제품(재화, 서비스)의 양(규모)이 크면 클수록 단위당 평균생산비용이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규모의 경제성이 생산에 관련된 비용의 절감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현실세계에서 규모의 경제성이 작용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필요한 부품을 기업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자체적으로 필요한 양만큼만 만들고 끝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성이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해당부품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기업에서 사다 쓰는 경우에는 그 기업이 한곳에만 납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양을 만들어 규모의 경제성을 실현하게 되고 수요자인 기업들이 싼값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이때 기업에서 자체 생산하는 양이 이미 규모의 경제성을 볼 수 있는 최소효율규모(minimum efficient scale)에 달한다면 밖에서 사다 쓰는 것과 직접 만들어 쓰는 것에 차이는 없을 것이다.

  둘째로 기업 내부에서 만들어 쓰는 것이 타기업에서 사다 쓰는 것에 비해 불리한 점은 시장에는 나름대로의 규율이나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데 시장거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게 됨으로써 시장규율로 인한 효율성 증진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규모의 경제성과 다른 것으로서, 꼭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시장의 규율 내지 압력에 의해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을 나타낸다.

  시장에는 복수의 업체가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되면 업체간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각 업체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코스트를 삭감하고 품질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힘이다. 반면에 기업안에서는 특정 부품의 생산에 관한 한 복수 부서간에 경쟁이 없고 개별적으로 성과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왠만한 비효율이나 타성이 있어도 지나쳐 버리게 된다. 조직안에서 벌어지는 관료주의나 도덕적 해이를 생각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시장거래와 기업내 활동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았는데 시장을 이용하는 경우와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 중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업내에서 자체 생산하는 것이 더 관련된 활동을 기업안으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고, 불리하다면 기업의 밖, 즉 시장에 맡겨버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場으로서의 기업과 시장이 선택되고 기업의 경계도 결정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업이란 무엇인가' #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