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죠? 매일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걷는데 그때마다 각각 무언가의 불편함이 느껴지니 말예요. 어느 날은 발바닥이 아팠다가, 다음 날은 엉치뼈가 결렸다가, 며칠 지나면 허리쪽이 삐걱댔다가, 아무튼 가지가지 몸에 안좋은 신호가 옵니다. 그래도 좀 걷다보면 차츰 나아지고 더 많이 걸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사라지니 그것 또한 신기한 일이예요.
이렇게 글을 시작하면 아! 이 사람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나보다 하시겠지만, 아니고요 매일같이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를 아침마다 세 바퀴씩 걷기 시작한지 이제 몇달쯤 되었어요. 그러면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한다고 하니 지금 내가 걷는 이 길도 산티아고와 다를 바 없겠다 싶어진 거지요. 먼 타지에서 한달이나 두달에 걸쳐 매일 길을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에 비할 수는 없지만 묵묵히 길을 걷고 생각에 잠기는 면에서 공통점도 있는 것 같아요.
길을 걷는다 함은 몸의 운동이자 마음의 수련이라고 생각해요. 걷는 만큼 몸과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요. 산티아고 순례는 매일 너댓시간 이상 걷는다고 하고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다음 날을 위해 빨래, 식사, 휴식을 해야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모두 걷기에만 할애하기에 훨씬 자신에 집중하고 내면에 충실할 수 있는 반면에 하루 1시간을 걷는 아파트 수행(?)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하시겠지만 나름 의미와 효과가 있답니다.
산티아고를 비롯한 여행프로그램은 우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서 오래 묵어야 하고 내집이 아닌 타향이라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마주치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아파트단지는 그럴 일이 없어요. 몸에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간편하게 갔다올 수 있고 잊은 게 있다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다시 돌아올 수 있지요. 순례, 여행에서는 대체로 내게 오는 연락을 그날 일정 끝나고 확인하게 되지만 아파트단지에서는 언제고 바로바로 확인하고 응답할 수도 있고요.
문제는 단위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어요. 동네라고 해서 대충 걷다 오거나 며칠 하다 그만두면 아무 소용 없겠지요. 짧은 시간과 짧은 거리지만 그 시간에 충실히 걷기에만 집중하고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웬만한 폭염과 혹한에도 집을 나서는 용기와 의지가 있다면 굳이 산티아고에 가지 않더라도 아파트단지에서 나의 산티아고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