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서도 취미, 운동, 모임, 일거리 등으로 여전히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제법 있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잠시 재미있는 소일거리를 찾았다가도 오래 못가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퇴직을 하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가 했더니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가보다.
이른바 재미와 의미의 문제에 또 맞닥치게 되는 것이다. 재미와 만족을 느끼면 그만인 데 그치지 않고 무언가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니 참 어려운 퍼즐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유교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네 세대는 약간의 여유와 취미를 즐기는 것이 당장은 좋지만 머지않아 공허함을 느끼게 되기 쉽다. 삶을 소비하는 데서 오는 결핍감이라고나 할까?
소비의 대척점은 생산이고 우리가 마냥 소비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더 많은 만족감과 안심감을 주게 되는 것이다. 텃밭에서 일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생활용품을 만들어보거나 하는 활동들이 단순한 재미보다 깊은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이다. 서양 사회에서 주목받는 직접 만들어 쓰기 즉 DIY 또는 최근 유행하는 maker movement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는지 모르겠다.
목공예, 도자기, 해비타트, 회화, 서예, 조형 등의 취미는 아마도 무엇을 만들어내는 활동과 연계되어 있어서 더 많은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글쓰기도 나름 자기만족과 의미부여의 활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에 한번 말한 적 있는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한마디는 이러한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삶은 취미만으로 만족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와 나의 주변사람들은 어떠한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의 경우 재미도 의미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은퇴 후 초기단계라서 그럴지 모르고 점점 나아지리라고 기대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주변에는 여전히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 같지는 않다. 모처럼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어쩔 수 없는 허전함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경우, 많이 내려놓고 적은 것에 자족하는 삶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퇴임하고 나서도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고, 일을 받아서 또는 남에게 부탁하거나 스스로 만들어서 하고, 저녁자리를 자주 하며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샘이 나거나 시빗거리 만들어서 어깃장 부릴 생각 없다. 내가 추구하는 방식과는 안 맞기 때문이다.
나는 퇴임 후 약간의 조정기를 거쳐서, 이제 거의 매일 지하철 타고 공공도서관 가는, 남들이 따분하다고 할만한, 그런 생활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터로 가거나 볼일 보러 나가는 모습에 역동감을 느낀다. 모두 열심히 사는구나, 지하철에서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구나 등등 수많은 감상이 들기도 한다.
이어서 도서관에 가서 긴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떠나 인문학 일반의 책 중에 이렇게 좋은 것들이 많았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내가 쓰고 싶은 글도 마음껏 쓴다. 글 쓰는 일이 쉽진 않지만, 큰 성취감을 주고, 치매 예방도 되고, 작은 흔적을 남기는 의미도 있어서, 나는 만족한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고, 기회를 엿보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일도 없으니 폼 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