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4월 말 가수 나훈아는 전국 투어콘서트 인천공연에서 공식은퇴를 선언하였다. 아직 한참 더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은퇴 선언에 덧붙여 한 말도 참 멋있다. 은퇴하면 옆 눈으로도 연예계 쪽 안 쳐다볼 것이라고 한다. 또 내 다리가 멀쩡할 때 안 가본 데 가볼 것이라고 한다.
한 연예인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무언가 되새겨볼 구석이 있는 듯하다. 이름하여 정점에서 내려올 줄 아는 지혜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 자리에 더 머물고 싶어 하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자리와 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니 범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기사에 의하면 로마시대 정치가 킨키나투스는 독재관으로 임명되어 미션을 수행하고 나서 임기가 수 개월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재관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시저가 독재관 임기를 마치고도 몇 차례 연장하여 자리를 지키다가 측근에게 암살당한 것과 대비를 이루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은퇴 이후 그 주변을 서성이고 여기저기 부탁하여 일을 계속하거나 자리를 이어가려고 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본인에게는 득이 되고 욕심을 채울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자리와 기회를 뺏는 셈이 되기 마련이다.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은퇴는, 더 할 수도 있겠지만 뒤로 물러서는 것이 되어야 한다. 때가 되면 탐욕과 노욕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물러나서 지금까지 하던 것과 다른 일이나 새롭게 몰입할 무언가를 찾으면 된다. 그게 취미, 봉사일 수도 있고 건강관리, 주식투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본인과 후배들에게 윈윈의 방법이 된다. 자신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고 기회를 독점하면 자신만 윈이 되고 후배들과 사회에게는 독이 되고 만다.
은퇴라고 하는 사회제도는, 이제 그만하고 제2의 인생을 살라고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제1의 인생을 계속 연장하여 살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하다. 안 하던 일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맞이하여 인생의 모드를 바꾸는 전환과정(transition process)을 거치게 되는데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앞의 기사에 이런 구절도 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맛있는 음식접시가 내 앞에 왔다고 해서 이를 계속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도 먹을 수 있도록 음식접시를 넘겨줘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은퇴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주어진 자리와 기회를 내가 계속 붙들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내 생각에는 내가 좀더 할 수 있을 것 같더라도 이를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자리에서 내려와 지금까지 하던 일의 연장에서 비슷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일을 하거나 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은퇴는 과거의 인생을 보완하는 단계가 아니라 대체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과거의 지위나 보수에 연연하지 않고 새롭게 임하거나 지금까지 하던 일이나 역할을 대체하여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고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제2의 인생이 되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리함으로써 더 큰 즐거움과 만족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론 딱히 나갈 곳이 없거나 해야 할 일이 없어지는 등 갑자기 바뀐 환경으로 인해서 낯설고 힘들며 고민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러한 과정을 이겨낼 힘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