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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주면 그렇게 좋아해?” 해외 반응 폭발 K-선물

수출보다 힘들었던 해외 바이어 선물 고르기

by 찬란

“파인애플 대리, 우리 거래선 사장님이 엄청 좋아하시더라. 선물 잘 골랐어.”

“와! 예상 밖이네요, 다들 걱정했는데…”

수출 거래를 많이 했다. 우리를 먹여살리는 건 팔할이 외국 거래선들이었다. 그들은 전세계에 있었다. 영업사원들은 가깝게는 중국도 제집처럼 들락날락했고, 멀리는 남아메리카까지 찾아가 그들과 만나고 계약을 따오곤 했다. 출장을 자주 다니는 수출팀 사람들은 마일리지만으로 전세계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비행기를 자주 탔다.

“파인애플 대리, 나 이번에 백만 마일리지 찍었잖아…”

“우와... 대단하시네요. 부러워요.”

내가 했었던 업무 중 하나는 외국 고객들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 업무를 맡았다. 그래서 매년 고객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은 두 종류였다. VIP 선물, 그리고 일반 고객 선물.

VIP 선물을 고르는 것은 꽤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점장님, 올해 VIP 선물을 뭐로 결정할 지 회의를 해야 하는데요.”

“아 그러게? 작년에 했던 금수저 세트도 괜찮았는데, 이년 연속은 좀 그렇겠지.”

“재작년에 했었던 인사동 도자기 세트는 어떨까요?”

“그거 통관 때문에 고생했잖아. 안전하게 가자.”

”그렇죠…그 아픈 기억이...“

VIP는 온갖 귀한 물건들을 접하는 중국의 부호들이 많았기에 선물도 신경써서 골랐다. 그들은 테이블도 따로 앉았고, 행사 시작 전 대기실도 따로 배정받았다. 그들은 뭘 봐도 시큰둥한 분들이었다. 선물을 고르는 것은, 나에게 시부모님 선물을 고르는 것 백 배 이상의 내적 갈등을 선사했다. 여기 내가 진행해봤던 VIP 선물들을 복기해본다.


1. 금수저 세트


당시 준비한 금 각인이 되어있던 선물용 수저세트

한국은 쇠수저를 쓰는 특별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금수저 세트를 선물하면 종종 환영받는 선물이 되곤 했다. 금을 좋아하는 나라 - 중국이나 인도 - 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한국의 수저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냈다. 그리곤 이 글을 영어, 중국어로 번역해 한 장짜리 설명문을 만들었다. 그리곤 고급스러운 한지에 뽑아서 정성스레 접어 넣어 포장했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쇠 숟가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장점: 꽤 반응이 좋았던 선물이었고 받았던 고객분 모두 다들 소중하게 여긴다고 들었다.

단점: 이 숟가락을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한 번의 일회성 선물로 끝났다.


2. 인물 캐리커쳐


업체에서 보내준 샘플, 박수희 팀장님 관계 없음

인물 사진을 보내주면 만화 캐릭터처럼 그림을 그려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지금은 GPT에게 부탁하면 셀프로 5초만에 가능하다. 그러나 당시엔 나름 예술가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 직접 그려주는 캐리커쳐가 퍽 인기가 있었다. 전세계 지점장들을 통해 VIP 고객들의 사진과 이름을 구했다. 예술가에게 12점의 그림을 전달받아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고 전달했다.

“파인애플 대리, 그 그림 그려주는 거 말이야, 우리 거래선 사장님 것도 추가해 줄 수 있을까…?“

장점: 액자에 잘 담아가서 선물하면 스몰톡 하기도 좋고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이후 그 선물 좋았다는 평을 가장 많이 들었던 선물이었다.


단점: 이름이 잘못 기재되면 큰 낭패. 외국인들이다보니 얼굴이 영 다르게 그려지기도 했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서로 난처해지기도 했다.



3. 인사동 도자기


인사동 도자기 갤러리, 위의 나무 상자에 포장되어 배송되었다.

인사동을 샅샅히 뒤졌다. 나름 외국인들이 좋아한다는 인기 있는 갤러리와 화랑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고려시대의 무슨 자기 스타일로 직접 구웠다는 도자기를 보고 스무 개를 구입했다. 도자기다 보니 담는 상자도 나무로 만들어진 튼튼한 것이었고 중국으로 보내야 하는 화물 부피가 꽤 컸다.

장점: 정말 특별한 선물이 되었고 특히 전통적인 물건을 좋아하는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단점: 모든 장점을 단점이 씹어먹는다. 배송하는 과정이 정말로 피가 말랐다. 나무 상자에 넣어 부피도 크고 무게도 무거웠다. 부담스럽다며 거절하는 배송업체도 있었다. 배송 중에 부서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해야 했고 문화재가 아니냐며 세관에서 연락오기도 했다. 도자기는 중국 통관 과정에서 며칠 간 잡혀있기도 했다. 행사 전 날 간신히 배송받았는데 정말이지 울 뻔 했다. 이후로 한동안 그 도자기 비슷한 모양의 그릇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4. 고급 화장품 세트


당시 준비한 설화수 선물세트, 여직원들의 픽은 에센스-마스크팩이었다.

설화수가 가장 무난했다. 해외 거래선도 많이들 알고 있는 브랜드였다. 브랜드의 선물 세트 중 예산에 맞는 세트로 고르기만 하면 되니 실무자 입장에서는 가장 편한 선택이었다. 국가마다, 연령별로 선호하는 화장품이 달랐지만 대체적으로는 올인원, 한번에 바르면 되는 에센스 제품들과 ‘마스크팩’ 제품이 인기가 많았다.

어떤 고객 선물이 좋냐는 질문에 한 중국 현지 직원은 심플하게 대답했다.

“와이프한테 가져다 줄 수 있는 화장품이 최고입니다.”

장점: 실무자 입장에서 가장 진행하기 쉽다. 모르겠으면 그냥 설화수 세트였다.


단점: 수년간 같은 선물이라 좀 질린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만큼 무난했다.

이 외에도 만년필, 와인... 정말 많은 선물을 구입하고 준비하고 배송시켜 봤다. 매 년 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전달하는 데에서 한 켜 한 켜 경험치가 쌓였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달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 거래선에서 정성스럽게 고민하여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고객들은 감동한 듯 했다. 출장을 다닐 때, 고객과 미팅을 했을 때 두고 두고 나오는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파인애플 대리님, 그 때 그 선물 말입니다. 저희 사장님 집무실에 지금도 놓여져 있어요…”

선물이 워낙 많이 들어오다보니, 일부 사장들은 들어오는 선물을 하급자들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선물이 흘러 흘러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 도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 선물은 한국을, 그리고 우리 회사를 대신해 그 자리에 있다. 선물이 특별하면,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리고 그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도, 그 선물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내가 겪었던 성취감과 좌절감도 나에게 남아 있다. 그래서 선물을 하기 위해 오래 동안 고민해 본 사람만이 가지는 ‘감’을 믿는다. 그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돈이 최고의 선물 아닌가요? 현금이 제일 좋던데.”

“음 제 경험으론,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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