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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l 08. 2016

신흥사, 속초, 강릉

신흥사, 속초, 강릉


우리 올드보이는 모처럼 속초로 가서 회 한 접시를 먹기로 하고 집에서 아침 9시에 출발했다.

양평에서 속초까지는 2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데, 가는 길에 설악산이 있어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미시령 터널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울산바위가 우뚝 서 있지만, 오늘은 구름이 많이 드리워서 산의 윗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속초에서 설악동 쪽으로 방향을 바꿔 호젓한 산길을 올라가면 설악산 입구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비는 무조건 5천원. 꽤 비싸다. 여기에 입장료는 따로 받는다. 주차료가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주차를 하고, 다시 입장권을 사야만 설악산으로 오를 수 있는데, 우리는 오늘 산에 갈 준비를 하지 않아서 설악산 입구에 있는 신흥사만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설악산에도 오랜만에 오지만, 신흥사 입구에 이렇게 거대한 문이 생겼다. 이 문은 사찰의 일주문이 아니고, 절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건물이 웅장하고 거대할수록 절의 권위가 커진다는 발상은 지극히 '반종교적'이고 '반불교적'이다.

신흥사는 설악산 일대에 거대한 땅을 가지고 있어서, 속된 말로 재벌 사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주차료 수입도, 입장료 수입도 신흥사에서 많은 부분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여기서 번 돈을 신흥사가 다 갖지는 않을 것이다. 조계종 종단으로도 꽤 많이 올라가고, 좋은 일도 많이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은 오히려 절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올라가면 신흥사의 진짜 일주문이 나온다. '설악산 신흥사' 현판이 또렷하다.

이 절은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이 한번씩을 들러 가는 곳이어서 국내외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들기도 한다. 우리가 가던 날은 평일이었음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도 많았다.

조성한 지 오래지 않은 거대한 좌불. 무엇이든 크고 거대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꼭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중국이든 아시아의 여러 불교국가든 거대한 불상을 만들어 모시는 경우는 종종 있으니 이걸 가지고 탓하는 건 좀 그렇다.

그럼에도 이런 거대 불상이 뭇 대중에게는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인식되고, 불교를 아끼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 하다. 거대한 불상만큼 불심도 그렇게 거대하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세속적인 판단이요, 욕심일 뿐이다.

신흥사 앞 계곡은 넓다. 마침 엊그제 비가 내려 물도 많고 깨끗하다. 이곳에도 중국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한여름 더위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계곡 옆에 있는 커피점에서 커피 한 잔. 신흥사 입구에 커피점이 있다. 건물도 기와로 지었고,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절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천왕이 있다. 신흥사의 사천왕은 멋진 건물 안에 모셔져 있다.

뭔가 무서우면서도 귀여운 사천왕은 죄없는 사람에게는 귀여운 존재지만, 죄를 지은 인간들에게는 지옥의 어떤 악귀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화려한 복장과 모자를 쓰고,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사천왕을 바라보고 절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교에서 부처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가로로 길고 바닥에서 낮게 떠 있는 목조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 건물 안에는 불경의 목판본이 들어 있다.

통로의 높이가 낮은 건 자연스럽게 고개와 허리를 숙이라는 뜻으로 만든 것이다.

고개와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면 정면으로 대웅보전 즉 사찰의 핵심 건물인 부처님이 모셔진 건물이 보인다.

부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손하라는 것을 건축물을 통해 구현한 것이니, 꽤 근사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대웅보전 앞에는 보통 탑이 있는데, 이 절에는 당간지주가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또한 탑이 아닌 석등이 서 있는데, 이 석등이 꽤 화려하다. 대웅전의 사뿐한 처마와 함께 석등의 살짝 올라간 연잎의 모양이 조화를 이룬다.

대웅전의 창살 무늬. 화려한 듯, 수수한 듯 그 모양과 색이 더 없이 아름답다.

삼성각. 불교가 들어오면서 그 시기에 민중들이 믿고 있던 전통 신앙을 수용했고, 그 결과가 산신을 모시는 신전을 사찰 안에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부전. 명부전 역시 전통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죽은 사람을 모시는 것은 어찌보면 불교의 정신과 배치되는 것임에도, 아이러니하게 공존하고 있다.

대웅전을 등지고 바라본 풍경. 석등의 비례가 아름답다.


불경의 목판본을 보존하고 있는 이 건물이 바닥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없애고, 공기가 잘 순환해 목판본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선조들의 지혜 가운데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해서는 퍽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었던 지혜로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과학적인 설계도 그렇지만, 건축물의 디자인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것이 사실이다.

약수터. 절에 있는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면 1년씩 젊어진다고 하니, 절에 갔을 때 약수터에서 약수 한 대접 마시는 걸 잊지 마시길.

종루.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건축물. 볼수록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신흥사 앞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는 모습이 완당의 '세한도'에 나오는 그 소나무를 보는 듯 하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거대 좌불. 석등은 당연히 크기가 작지만 원근법에 의해 같은 크기로 보인다.

정면으로 본 좌불. 뒷산이 아담한 배경으로 보인다.

향로와 좌불. 향로는 백제 때 디자인을 도입한 듯.

내려오면서 본 한 쌍의 소나무. 일부러 가지를 다듬었을까, 아니면 저절로 저렇게 아름다운 한 쌍이 되었을까.

구름에 가린 권금성.

신흥사를 보고 속초 물치항으로 갔다. 물치항에는 잘 아는 분의 이모님이 하시는 횟집이 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챙겨주시는 이모님에게 맡기고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해삼, 멍게와 오징어 회. 바닷가 항구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먹는 회와 막걸리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전복치, 도다리새꼬시, 고린치라는 잘 모르는 생선. 회는 무조건 맛있다.

이모님이 서비스로 주신 물회. 도다리와 해삼이 듬뿍 들었다.

매운탕. 밥 한 그릇 뚝딱.

물치항 회센타.

수평선. 아련하다.

속초에서 회를 먹고 일행 가운데 한 분의 친척이 살고 있다는 강릉으로 갔다. 오죽을 조금 얻었으면 하는 일행의 바람을 이뤄주셨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미산 포장마차에서 김치전과 막걸리로 하루의 긴 여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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