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를 안 맡겨. 부모님이 아이를 돌보는게 힘드실 것 같아 죄송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아이가 내 품을 떠나 가버리는 것 같아 서운하거든"
"아이가 할머니 품에 쏙 들어가 집에 돌아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얄미워서) 꿀밤 한 대 때리고 싶더라"
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맞벌이 생활을 하는 내게 또래 아이를 키우는 주변 엄마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항상 그 뒤엔 '아이를 떨어뜨려 놓고 어떻게 출근해?' '아이가 아프거나 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 그리고 '엄마랑 헤어져서 바로 할머니한테 가버리면 서운하지 않아?'란 질문이 꼬리처럼 붙는다. 이런 엄마들의 질문은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길 때의 불안함, 내게 모든 것을 의지하던 아이가 다른 사람에 의지한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에서 나온다.
아이가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날.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첫 모유수유를 하고나면 '내 몸의 일부분인 아이가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탯줄 연결이 끊어져도 이 생각은 꽤 오래 지속된다. 음식, 기저귀 갈기, 목욕까지 엄마의 손을 거치지 않는 때가 없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런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아빠'를 찾기도 하고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찾는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 엄마보다 친구랑 노는 게 재미있어 계속 놀이터에 있으려 할 때도 생긴다.
엄마, 나 오늘은 할머니집에서 자고 갈래
처음 아이가 할머니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나 역시 서운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 '엄마 없이도 이제 잘 살 수 있다는 건가' '내가 신생아 때부터 얼마나 지 뒤치닥거리를 했는데 이렇게 배신할 수 있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푸념 섞인 내 말투에 친정엄마는 "너도 어릴 때 그랬어. 시부모님께서 애들도 봐주시고 정말 좋으신 분들이네. 감사인사라도 해"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맞벌이였던 나 역시 초등학교 3~4학년때까지 거의 외가댁에서 살았다. 집을 지척에 두고도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외할아버지와 놀기 위해 집에 가지 않았다.(잔소리하는 엄마가 없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와서 자고 가는 날이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하고 푹 쉬어'라고 말씀하셨다. 돌이켜보면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온 자신의 딸을 육아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편히 쉬게 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이 들어 자신의 몸도 여기저기 아프면서 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 난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거나 내 방에서 혼자 쉬는게 편해졌고 더 이상 외할머니댁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내가 어릴 적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꽤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지금 내가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된 것도, 지치지 않고 집안일과 육아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돌봐 주시는 덕분이라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아도 당장 달려갈 수 없는 엄마 대신 할머니가 달려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물론 아이들 간식이나 교육적인 부분에서 종종 의견이 부딪힐 때도 있지만 말이다. ㅋㅋ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저작권자 © 올리브노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