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을 하고서 결혼과 효도가 결부되어 있는 점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최고의 효도 선물로 결혼을 꼽는것도 서둘러 결혼해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라고 말하는 것도 납득이 안됐다. 결혼 전에는 엄마와 말도 잘 섞지않던 아들이 부모님께 효도할 사람을 찾는 것도 뻔뻔해 보였다. 나아가서 결혼은 애국이라는 거창한 개념과 닿아있는 것도 불편했다. 다자녀를 둔 부부는'애국자'가 되고 대한민국의 존폐를 결정할 키워드라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을 보면 시대착오적이라 느낀다.
10년 전만 해도'싱글'은 단순히 미혼.'솔로'는 연인이 없는 사람을뜻했다. 그러나 이제 '싱글' 안에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자발적 싱글(비혼)과 아직 안 한 비 자발적 싱글(미혼),이혼 후 혼자가 된 싱글, 싱글 (맘, 대디) 등 다양한 상황이 포함된다. 싱글이란 단어 하나로 뭉뚱그리기에는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들 모두 자신들의 선택을 존중 받기 위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 결혼은 인생의 필수 과정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느 틈에 사회가 그렇게 된 것은 그럴 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런 변화가 반갑기만 하다.
결혼이라는 건 하나의 문에 불과하다.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밖으로 향해 나있는 문을 닫아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닫고 싶기 때문에 닫는 것이다. 자물쇠로 완전히 걸어 잠근문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열고 싶어지면 그때 가서 열면 된다. 지나친 진지함은 거둬도 된다. 왜냐하면 결혼을 선택할 권리 혹은 선택하지 않을 권리는 평생 동안 매 순간에 걸쳐 주어지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안되는 종교인이 아닌 이상 얼마든지 결혼과 비혼을 바꿔 선택할 수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하든 결정한 순간만큼은 당사자의 분명한 의지다. 너나 할 것 없이 결혼하던 시대는 끝났다. 모계 사회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역사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후대 사람들은 누구나 결혼하던 기이한 시대에 대해 배울지도 모른다. 젊은 남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뭐 그렇게 문제인가. 사회적 압력이나 규범이 없어져서 결혼하는 사람과 아이들의 수가 줄어든다 해도 그것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어느 날 딸이 자기가 나이가 더 들어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낸다면 지금처럼 자기를 응원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지야 엄마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인생에서 인간 관계와 사랑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하나 뿐인 인생을 마음껏 즐겨!” 라고 말해줬다. 이 말을 했던 때나 지금이나 결혼과 비혼에 대한 내마음은 같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딸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조금씩 늘어났다. 어떤 생각이 지금처럼 머릿속에서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 그 감정의 실체를 들여다 보려는 시도를 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면 누군가에게 말해줄 이야기가 전보다 더 또렷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으니 그것을 전제로 딸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 뭘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사랑했으면 좋겠다였다. 결혼도 안 했는데 이뤄놓은 거라도 있어야지 하면서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남이 보기에 선망의 대상이 될만한 것들로 채우고는 세상을 향해 ’결혼하지 않고 싱글이기 때문에 이만큼 해냈어!‘ 라고 큰소리치기 보다는 혼자인 자체로 충분한 인간이고 만족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살길 바란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