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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3시간전

시련 속에서 더 진한 덕의 향기


"덕은 귀한 향료와 같다. 불에 타거나 부서질 때 가장 진한 향기를 내듯이, 좋은 시절에는 인간의 악덕이, 어려운 시절에는 인간의 덕이 가장 잘 드러난다."(Virtue is like precious odours, most fragrant when they are incensed or crushed; for prosperity doth best discover vice, but adversity doth best discover virtue.)(프란시스 베이컨, [에세이] 중에서)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흔히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만, 그의 관심은 인간 본성과 도덕철학으로도 깊이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에세이집 『수상록』은 인간의 덕과 악덕을 꿰뚫어보는 통찰로 가득합니다.


 베이컨은 인용된 글을 통해 덕을 단순히 내면의 성품으로 한정하지 않고, 시련 속에서 빛을 발하는 힘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아레테(탁월함)’ 개념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베이컨은 인간의 본성이 번영과 시련이라는 두 가지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풍요로움이 오히려 인간 본성의 약점을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또 다른 저서 『신기관』에서 말한 ‘시장의 우상’ 개념처럼, 넘치는 풍요가 오히려 우리의 판단을 흐리고 나태함과 탐욕을 부추긴다고 본 것입니다. 반대로, 시련은 우리 안에 잠재된 덕을 일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베이컨은 시련을 "영혼을 단련시키는 대장간"에 비유하며, 인간이 어려움을 통해 성장하고 덕성을 발휘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역사는 시련 속에서 빛난 덕의 사례로 가득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진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저항 운동을 펼치며 용기와 희생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베이컨이 말한 덕의 향기가 시련 속에서 어떻게 피어나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덕은 시련 속에서 더 강하게 드러나며, 이를 키우는 과정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는 ‘그릿(끈기)’ 연구를 통해 어려움이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우리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베이컨이 오래전에 통찰한 바를 현대 과학이 다시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덕은 의식적인 노력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매일의 작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덕을 실천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공감하려는 노력,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자세,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보다 더 힘든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작은 실천은 덕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이 됩니다.

베이컨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덕은 개인과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덕은 단지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역경을 대하는 태도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마치 불에 타는 향료가 더 진한 향기를 내듯, 우리가 마주하는 시련은 우리 안의 덕성을 일깨우고 성장시킬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변화의 시대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덕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덕의 향기’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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