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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체형

< 시적 사물: 말 >

by 모카레몬
꽃병, 창문.jpg



말이 형체가 있어서 눈에 보인다면

아마도 빈 그릇 하나 같을 것이다


거짓말은 얕아 금세 넘치고

참말은 오래 담겨 무게를 더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지친 하루를 덮어주는

포근한 담요일 것이고


미워한다는 말은

유리 조각처럼 빛을 찌른 뒤

물속에 잔금으로 남을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은

어두움 속에서도

오래 환한 등불일 것이고


환대하다는 말은

길 끝에서 먼저 불을 지피는

작은 모닥불일 것이다


가끔 말들은

사람의 삶보다 먼저 자라


먼 데서 불어오는 풀잎의 바람처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날들을

오래 머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말이 만약 몸을 가졌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시입니다.

보이지 않는 말에도 무게와 향기와 빛과 마음을 가지고

사람 곁에 오래 남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삶보다 더 길게 살아남아

먼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몸으로 태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언 16:24)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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