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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서문

< 시적 사물 : 홍합, 백합, 바지락 >

by 모카레몬


조개탕.jpg



그래, 하루는 입으로 시작된다


시장에서 살아 있는

홍합, 백합, 바지락을 사 왔다


싱싱한 족적이 비닐봉지 속으로

모래펄의 내력을 옮기고 있었다


열리는 봉지의 입구로

육지의 소리들이 젖어들 때

닫히는 단단한 세계들


틈을 허락하지 않는 각오가

손 안으로 들어 올려지고

짠기를 훑는 민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끓는 물속에서

하나둘 입을 열더니

끝내는 기척이 없다


죽음은 생각보다 고요했고

국물은 더 뽀얗게 우러났다


늙은 시부모는 그 탕국에 밥을 말아

잠시 등을 펴고 웃었다


죽은 것들의 힘이

살아 있는 몸을 지탱했다



시장에서 싱싱한 탕거리들을 보며 뽀얀 국물이 우러났던 한때가 생각났습니다.

시부모님께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 살아있는 조개들을 사 왔던 날이었죠.

얼마나 뽀얗게 우러났는지 그 시원한 맛이 식구들의 입맛을 돋게 한 날이었습니다.

별 일 아닌 사소함이 문득, 좋아하시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3:13)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찬 일주일 보내세요!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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