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사물 : 전깃줄>
아찔하다
공중으로 전깃줄들이 얽혀있다
옆구리 맞대고 버티는 가게들
덜컹거리는 바람만 스쳐간다
합선 잦은 길
불 꺼진 간판들만 남아 있다
저편 동네는 운이 좋아
전선이 땅속에 묻혔다
바람은 잠잠하고
보도 위에는
유모차와 자전거가 나란히 웃는다
골목 하나를 두고
이쪽은 어둠이 성급히 자리를 차지하고
저쪽은 불빛이 천천히 눌러앉는다
여기서는 전기가 꺼져
저녁이 통째로 삼켜지고
저기서는 음악이 골목까지 번져 나온다
바람은 언제나
한쪽 지붕만 흔들고 지나간다
엉킨 전깃줄 아래
비상구 없는 문을 달고
잠들지 못하는 집마다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전깃줄 끝에는
달 하나가 매달린다
내 불면도 달빛에 엉킨다
오래 바라보아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 앞에서 자주 멈추곤 합니다.
겹겹이 쌓인 시간 속의 골목은 말 없는 얼굴처럼 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전히 개발이 되지 않는 곳과
이미 달라져 버린 곳이 한 걸음 사이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 불균형이 어쩌면 우리 마음에서도 반복되는 풍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과 불안이 늘 공존하는 것처럼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