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피렌체의 오후는 언제나 빛으로 시작된다.
대성당 돔 위로 낮은 햇살이 스며들면,
도시는 잠시 멈춘 듯 고요한 숨을 내쉰다.
오늘 그 빛 속에서 천천히 걸으면서 나는 알았다. 이 도시에 다시 오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를 떠나보낸 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정리되지 않은 장면 하나가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베키오 다리에 다다랐을 때, 강물은 금빛 조각처럼 반짝였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기념품을 구경했지만, 나는 난간에 손을 얹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이곳에서 그와 나란히 서서 웃던 기억이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은 사진보다 오래 남아.” 그 문장은 언젠가 잊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삶을 흔들어놓을 만큼 가까웠고, 그만큼 쉽게 상처 입을 만큼 젊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이유 없이 싸우는 날이 많아졌고, 마지막 여행이었던 피렌체에서 그 틈은 더 넓어졌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그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말했다. “쓴맛도 괜찮아. 그래야 오래 기억에 남지.”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을 찌르는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숨이 찼다. 하지만 그때는 그의 느린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었던 기억이 있다. 말없이 걷던 그 시간,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가장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오늘 홀로 언덕을 오르면서 나는 그때의 침묵을 떠올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 말하지 않아도 알았던 감정,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순간들.
노을이 도시 위로 천천히 내려앉을 때, 나는 가슴속에 넣어 둔 엽서를 꺼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주었던 낡은 엽서. 짧은 말이 적혀 있었다. “Buona fortuna.” 행운을 빈다는 말. 그러나 그날의 표정은 이별을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엽서를 접어 다시 넣으려는데, 종이 안쪽에서 작은 종잇조각이 떨어졌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 조각을 펼쳤다. 거기엔 그의 익숙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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