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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18. 2017

가을과 은행나무

가을은 냄새로 만난다.


가을은 냄새로 만난다. 아무리 추운 계절이라도 아침마다 환기를 하는데, 이때 냄새로 계절의 오고 감을 알 수 있다. 여름의 축축함이 빠져나간 가을의 냄새는 바작하다. 그리고 끝맛이랄까, 끝부분의 냄새가 독특하다. 가을 냄새는 간식으로 볶는 콩처럼 고소하고 약간의 탄내가 섞여있는데, 심호흡하며 계속 맡다 보면 끝부분에 새침한 냄새가 난다. 냄새를 표현하는 형용사로는 완벽히 말하기 어려운 새침한 끝냄새가 있다.


4살 때부터 단독주택에 살았다. 물론 4살 전의 기억도 있다. 어린 나이에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4살 전에 살던 집은 단칸방에 얕은 다락이 있고, 화장실도 집 밖으로 나가야 갈 수 있는 낡은 집이었다. 입식 부엌에서 엄마는 주방용 고무 슬리퍼를 신고 밥을 했다. 어릴 때 봤지만 아궁이와 난로가 있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그 난로에서 엄마는 찌개를 끓였다. 단칸방 집에서 나오면 인천역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내 키보다 조금 높은 회벽이 있었다. 회벽 건너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져 그 위로 보이는 시야에서 여러가지를 상상만 할 수 있었다. 사실 회벽 건너에는 그저 우리와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끼어 앉아있었을 뿐이다.


그 시절의 낡은 집에서 4살을 기준으로 우리 집은 완전히 바뀌었다. 단칸방에 5 식구가 함께 누워 자던 비좁은 집에서 방 4칸에 욕실이 2개, 게다가 거실 형태의 주방이 있고 널찍한 마당이 있는 집으로 바뀐 것이다.

이사하던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가 나를 할머니 댁쯤에 맡겨두고 이사를 했을 것이다. 그 집에서 매일 어리둥절했다. 집이 서서히 커지지 않고 급격히 커진 것은 아무리 내게 “여기가 너의 집이다”라고 한들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은 커졌고, 일을 시작한 엄마는 바빠졌다. 나를 맡겨야 할 보모가 필요했고, 당시에는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가 없었다. 6살이 돼야 유치원,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었다. 맡길 곳이 없으니 그저 집에 놓여있는 처지였다. 나이차가 많은 언니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저녁밥을 먹을 때나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커진 집만큼 내 유년기는 텅 비어갔다. 나는 수수 빗자루처럼 언제나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텅 빈 나날 중 가을이었다. 마당에는 아빠가 조금씩 심기 시작한 나무가 채워지고 있었다. 대문 옆에는 늘씬한 은행나무가 있었다. 은행나무는 부채모양의 잎사귀를 아주 많이 매달고 있었다. 아빠는 은행나무라고 했지만, 나는 부채 나무라고 했다. 아빠는 은행나무라고 고쳐 말하라고 했지만, 내가 계속 부채 나무라고 했더니 화를 내셨다. 나무들도 제각각의 이름이 있고 그것대로 부르지 않으면 어른에게 혼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새삼 나무가 무서워졌다.


내 마음속 부채 나무, 그러니까 은행나무는 엄청 늘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우연히 옆집의 나무를 봤는데 잎사귀는 똑같이 생긴 것이 분명 은행나무인데 굉장히 뚱뚱했다. 우리 집 은행나무보다 키도 몸집도 훨씬 컸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노랗고 동그란 것을 자꾸만 밑으로 떨궈내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떨궈진 열매는 보기보다 약한지 떨어짐과 동시에 부서졌다. 귤껍질의 색을 닮았고, 감의 색도 닮았다. 가을에 오는 열매들은 서로 닮았다.

열매를 하나 집어 들었는데 연약한 촉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옆집의 나무, 옆집의 열매니까 가져갈 수 없었다. 바닥에 다시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손을 씻었지만, 이상하게도 엄지와 검지에서 연약한 열매의 냄새가 났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빨리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 했다.

엄마 그것 알아? 옆집에 그것 말이야!

이윽고 엄마가 버스에서 내렸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나이였다.

정말이지 젊고 예쁜 나의 엄마!


버스에서 내리는 엄마를 보자마자 오늘 내가 발견한 것을 설명했다. 엄마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우리 집 은행나무와 옆집 은행나무의 생김이 다르고, 옆집 은행나무는 이상한 것도 떨어진다는데 엄마가 너무 담담해서 살짝 무안했다.

이윽고 집에 도착했고, 들어가기 전 엄마와 나는 옆집 앞에서 연약한 열매를 확인했다.

“이건 은행이라고 해. 맛있는 열매야.”

“어? 이게 먹는 거라고?”라는 대답과 동시에 나는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 입에 넣었다.

엄마는 기겁을 하며 뱉으라고 내 등을 쳤다. 그러나 이미 나는 맛을 봐버렸다.


아, 겉을 벗겨내고 먹는 건 줄 내가 알았겠나. 열매라기에 궁금한 마음에 입으로 넣어버린 원시적인 나는 세상의 끝을 달리는 떫음과 꼬린 냄새를 입 안 가득 품었다. 지독한 냄새는 내 눈코입을 타고 흘렀다. ‘떫다’는 표현을 배우기도 전인데 그 순간 이미 온몸으로 떫음을 배워버렸다. 내 입안에서 충격이 터져 나왔다. 대문 앞에서 투닥투닥 소리가 들리니 옆집 아줌마가 나왔다. 아줌마의 눈앞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옆집 대문 앞에 침을 뱉어대는 나와,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엄마가 나란히 서있었다.

요샌 국화를 보면서 가을의 신호를 알아채기도 한다. 난 참 국화가 좋아.


다음날 저녁, 옆집 아줌마가 우리 집으로 은행을 한 대접 가져오셨다. 엄마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어제의 떫음과 비참한 냄새가 떠올라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신기하게도 아줌마가 준 은행은 귤껍질색의 겉면이 없고 뽀얀 아이보리 색의 딱딱한 껍질의 열매였다.


엄마는 딱딱한 껍질을 부숴 안쪽의 연두색 열매를 꺼내 이쑤시개에 끼웠다. 이쑤시개 하나에 4알씩. 그것을 불에 구워 내게 줬다. 처음 먹어본 은행은 말랑한 것이 매우 고소한 맛이었다. 어젠 그렇게 괴이한 맛이더니, 사실 이런 고소함을 숨겨놨던 거야?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내 간식은 은행구이였다.




우리 집 대문 앞 은행나무가 수나무, 옆집의 토실한 은행나무가 암나무라는 것을 안 것은 중학교 때였다. 물론 수나무도 오래 살면 몸집이 커지긴 하지만, 어쩐지 우리 집 은행나무는 나이도 별로 안 많은 남자면서 으스대는 척 늘씬하게 서있는 것 같아 밉살스러웠다. 은행도 안 열리는 수나무 주제에.


은행나무의 암수를 배우고 온 날, 학교에서 돌아와 우리 집 은행나무를 몇 번 걷어찼다. 배신한 남자 친구의 명치를 가격하듯, 자손이 번성하지 않는 것을 여자 탓하는 못난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치듯.


오늘 아침 도서관에 가는 길에 은행나무가 많았다. 거리에 은행을 많이도 흘려 놨다. 밟으면 냄새가 나는 은행. 회사에 다니던 시절엔 은행을 밟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내 주변으로 자꾸 냄새가 나서 일부러 피해 걷곤 했다.


지금은 신경 쓸 사무실에 가지 않으니 밟으면 좀 어떤가. 게다가 이 냄새는 그리 나쁘지 않다. 고릿하고 콤콤한 냄새는 이 계절이 아니고는 자취도 찾을 수 없다. 지금 뿐이다. 부쩍 짧아지는 가을에 은행 냄새가 아찔하다. 이쑤시개에 끼워진 은행구이를 조르기엔 엄마의 팔 건강이 심상치 않다. 그저 걸을 뿐이다. 은행나무가 안내해 주는 아름다운 가을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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