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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Oct 06. 2021

달고나 만드는 자 vs 넷플릭스 주식 사는 자

아! 도저히 못 참겠다.

인스타에 미친 듯이 올라오는 달고나 피드를 보고

1층에 있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도 달고나 만들어 볼까?]

그랬더니 바로

[베이킹 소다 어딨어?]라고 답문이 왔길래

나는 일층으로 쪼르르 내려갔다.

남편은 벌써 설탕과 국자를 꺼내서

신난 표정으로 가스레인지 앞에 서있었다.

그깟 달고나가 뭐라고 마흔 넘은 아저씨가

단박에 천방지축 초딩1학년이 됐다.


마지막에 아주 살짝 넣어 섞으면 부푸는 그 마법 가루가

베이킹 소다라는 걸 방금 알았다.

만드는 건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졌는데

문제는 그 존재를 내어 놓는 거였다.

베이킹 틀에 내려놓았더니 그냥 찰싹하고 붙어버렸다.

달달한 냄새가 코끝으로 녹아들어 모양이 엉망이어도 상관없어 보였다.

쿠키틀 같은 것도 없어서 칼로 모양을 내려했는데

그게 가능한 찰나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찰나란 진짜 짧았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생각보다 빨리 굳어버렸다.


분명 학교 앞 아줌마는 마지막에 촤라락하고 내려놓고

또 촤라락하며 모양이 완성됐는데

장비의 문제인지 우리가 만든 건

쇠 접시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양이 망했지만 이상하게도 실망되지 않았다.

그걸 부셔서 한입 먹었더니 정말 천국의 맛이었다.

달콤하면서도 마지막엔 아주 섬세하고 날카로운 쓴맛이

밸런스를 이루었다.

우리는 갑자기 망한 달고나 조각 부자가 됐다.

내일 라테 위에 토핑해 먹어야지 했는데 자기 전에  보니 싹 사라졌다.

남편이 나 몰래 싹 다 먹어 치운 거다.

망할수록 맛있는 악마의 맛


달고나는 망해도 맛있는 유일한 음식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망할수록 그 만만함에 더 맛있을 수도 있다.

마시멜로우를 장작불에 아무리 맛있게 구워도 이 맛은 안 난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이 해준 요리가 달고나가 되었다.

혼자서 낭만적인 밤이었다고 생각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빗소리에 눈을 떠보니

넷플릭스 주가가 사상 최고점을 찍고 있다.

비 오는 날은 체온이 살짝 낮은데

그 순간 남편이 내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주는 걸 좋아한다.

난 그 손바닥을 내팽개치고 벌떡 일어났다.

테이퍼링이니 뭐니 해서 대부분의 주가가 내려간 살벌한 이 마당에

혼자서 최고점 질주라니!

'나도 분명 다 알고 있는데, 왜 안 산 거야 나 자신아?'

포브스에선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넷플릭스 주식을 최고가로 이끌었다고 한다.

이런 기사까지 읽으니 내 억울함이 더 치밀어 올랐다.

어쩌면 당연히 예견된 거였고 힌트가 온 세상에 널린 거였다.

그 힌트를 읽어 주식을 산자와 달고나만 만든 자의

오늘 아침 기분과 하루와 인생의 쾌적함은 많이 다를 것이다.


뉴스를 켜도 SNS를 켜도 달고나 이야기뿐이었다.

파리에선 2시간 줄을 서서 먹고

틱톡에서도 달고나 만드는 영상이 인기다.

오징어 게임 보려고 재가입했다는 사람의 인증도 많았다.

'이걸 공중파에서 했다면' 하는 짤이 돌아다니고

[‘억지 PPL 이 주는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이거 하나만으로도

넷플릭스의 가치는 충분하다. ]는 트윗에 열광했다.

왜 이런 힌트들을 그냥 흘려보낸 건지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제프 베조스가 오징어 게임에 관한 멘션을 던졌을 때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까지 예민하게 구는 걸 남편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최근 나의 부캐인 '주식 트레이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요상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시스타가 박사를 할 예정이라서 내 주식 수익으로

그 학비를 대고 싶다는 뜬금없는 목표다.

(예전엔 다른 형제들만 유학 보내줘서 울었던 사람입니다만)

이유는? 평생 자랑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할 때마다 겉멋을 부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실용적이다.

내 학비를 벌려고 한 거였다면 이렇게 까지 열심히 안 했을 거다.


빨리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나는

그날부터 더 큰 수익 내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끌고 나간다.

최근에야 나는 내 방식을 찾은 것 같다.

나만을 위한 목표보다

자랑하고 싶은 스토리를 목표로 잡으니

더 효율이 생기는 인간이다.


어젯밤 달고나를 만들면서 넷플릭스 주식을 샀다면? 어땠을까?

이런 이불 킥 후회를 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주식의 신이 보고 계셔'

(영감은 ‘신령님이 보고 계셔’ 책 제목에서 얻었습니다만)

얼굴도 모르는 주식의 신 얼굴을 대충 그려서 붙였다.

내 앞에 스쳐 지나가는 힌트들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다.

달고나 피드를 보면서 '우리도 달고나 만들자'가 아니라

이건 '넷플릭스 주식을 사라'는 뜻이야 라고 읽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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