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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Apr 23. 2019

청년들만 가난해지는 이상한 나라

<지옥고에 갇힌 청춘> 취재 끝에 내린 결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취업*주거 등과 관련한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에는, 이런 관점이 한 줌씩은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고요. 원래 그렇다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꼰대의 상징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옥고'라고 하더군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청년들의 지옥 같은 주거 환경을 대변해주는 신조어입니다. 진짜 저도 해봤습니다. 대학시절 옥탑방에서 석 달, 고시원에서 일곱 달 정도 살았습니다. 춥고 시끄럽고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잘 돼서 돈 벌면 좋은 데 살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말았지요. 그게 지금 청년세대에 대한 저의 공감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나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취재하면서 시나브로 깨달아갔거든요. 청년들의 짓눌린 눈빛이, 지표와 통계가, 부동산에 몰빵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 우울한 미래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로드맨> 화면 캡쳐.


먼저 직접 방을 구해봤습니다. 나름대로 서울 대학가 중에는 싸다고 소문난 신림동을 택했습니다.


소싯적 대학생 때 생각하고 월세 3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방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공인중개사는 반지하방 두 개를 보여줬습니다. 한 명이 누우면 공간이 거의 꽉 차거나, 화장실이 방바닥보다 높아서 키 170cm 이상은 허리를 숙여야 하는 방이었습니다.


두 명도 누울 수 있긴 있다. 화면 속 기자는 로드맨(저는 기획자예요).


반지하 말고는 없냐고 물었더니, 옥탑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나 <미생>에서 보던 하늘이 가까이 펼쳐지더군요. 높으니까요. 하지만 겨울엔 지나치게 춥고 여름엔 지나치게 덥겠죠. 그리고 주인집을 통해 올라가야 했고요.


낭만은 있으나 낭만만 있다는 옥탑방.


월세를 40~45만 원으로 올리면 그나마 살만한 집이 조금씩 나옵니다. 물론 단점을 하나씩 품고 있었지요. 창문이 없다던가, 창문이 남향으로 나 있지만 코앞에 옆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던가. 아니면 30년 이상 된 집이라던가.


단점이 없는 곳 하나만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창도 나 있고, 개인 공간도 좀 넉넉한 새 원룸이요. 가봤더니 복도에 CCTV도 설치돼 있고 대리석까지 깔려 있더군요. 흡족했지만 가격이 단점이었습니다. 월세 75에 관리비 7. 매달 82만 원을 내면 머물 수 있는 방이었습니다.


이 방은 가격이 단점이네...


서울은 포기. 지방은 좀 괜찮을지 내려가 봤습니다.


충남 아산의 한 대학교 앞 원룸촌. 비교적 집도 넓고 싸더군요. 그런데 여기는 월세 대신 연(年)세를 내야만 했습니다. 12달치 월세를 계약할 때 한 번에 내야 하는 거죠. 목돈 구하기 어려운 학생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부동산에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니면 학생들이 방학 때 집을 비워 집주인이 장사를 못한다"는 겁니다. 방이 비는 걸 집주인이 책임져야지, 학생한테 책임을 떠넘기다니요.


학생에게 "연(年)세 말고 월세 받는 방으로 가면 될 거 아니냐"라고 물었더니 이 동네에 그런 방은 없다고 했습니다. 집주인끼리 담합까진 안 했을지 몰라도, 수요자 입장에서는 방을 형편에 맞춰 골라보고 살 선택권이 사라진 셈입니다.


1년 월세를 한 번에 받아야 방을 내어주는 지방대학 앞 원룸촌.


몸 뉘일 곳 하나 찾기 힘든 대학생 시절을 벗어나 취직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젊어서 고생한 만큼, 돈 벌기 시작하면 더 나은 주거환경이 찾아올까요?


30대 직장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졸업 전부터 지금까지 5년째 고시원에 살고 있습니다. 월세는 46만 원. 보증금 낼 목돈을 모으지 못해 계속 고시원에 눌러앉아 있는 겁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실수령액으로 147만 원. 월세 내고, 학생 때 빚졌던 학자금 대출 갚아나가고, 생활비 쓰고 나면 목돈 모으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고시원 생활에서 언제 탈출할 수 있을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습니다.



저희가 극단적인 사례만 취재했을까요?


보편적인 지표와 통계도 분석해봤습니다. 그중에 주거빈곤율 지표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주거빈곤율이란 1인 가구가 최소 주거면적인 14㎡이하에 살고 있는 비율을 이릅니다.


전국 평균으로 보면 2000년부터 15년간 주거빈곤율이 절반 넘게 줄어들었습니다. 29.2%에서 12.0%까지 내려갔죠.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였지만 최소한의 공간 이상에서의 삶은 계속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청년들만 따져 보니 오히려 그 비율이 더 늘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20~34세를 분리해서 통계를 보면, 같은 기간 31.2%에서 37.2%로 올랐습니다. 청년 세 명 중 한 명은 주거빈곤자인 셈이지요.


2000년~2015년. 그 사이 우리나라는 IMF도 극복하고, 코스피 지수 2000을 넘어서고, GDP는 3배가 올랐습니다. 35살 이상 어른들의 주거환경이 2배 넘게 나아진 그 기간 동안 최소 주거면적조차 확보 못한 청년들이 서울에서만 수십만 명 더 늘어난 셈이지요. 굵직한 경제지표들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데 청년들은 오히려 가난해지는 이상한 나라에 제가 살고 있었던 겁니다.


청년들만 살기 열악해지는 시대를 팩트맨이 정리.


그럼, 대책은 없을까요?


일단 대학생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기숙사를 늘리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기숙사를 지으려는 학교마다 주민 반대에 부딪혀서 미뤄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학가 주변에서 원룸과 하숙을 운영하는 들이죠. "우리의 생계도 보장해달라. 우리도 죽겠다"는 게 기숙사 건립 반대의 이유입니다. 그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인정할 순 없습니다. 집세로 돈을 버는 건 불로소득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그동안 대학가 주변에 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벌고 있던 그 돈들을 '당연히 주어져야 할 생존권'으로 봐야 할까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주민 반대와 대학 자체의 예산 문제 등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기숙사 건립 비율은 턱없이 낮습니다. 한국사학재단에서 서울에 있는 33개 사립대학의 기숙사 실태를 조사해봤더니 학생 수용률이 14% 정도더군요. 나머지 86%의 학생은 서울 살던지, 아니면 알아서 집을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양대 인근 하숙집 주인의 말.


서울시에서도 방안을 내놨습니다. 역세권 청년주택이 대표적이지요.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지하철역 350m 이내에 고층 주택을 짓습니다. 용적률을 낮춰 민간 건설사에게 건물을 더 높이 올릴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거죠. 그 대신, 입주자의 15~25%가량을 공공분양으로 청년에게 값싸게 제공할 것을 요구합니다. 민간 건설사 입장에서는 용적률이 풀리니 너도나도 달려들겠죠.


좋은 방향이지만 이렇게 수용할 수 있는 청년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현재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5곳에서 총 1400가구가 들어선다고 하니, 20%로 계산하면 280명 정도의 청년만 혜택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아직까지는 '로또 청약'일 수밖에 없죠. 공공분양이 아닌 일반분양 가구의 평균 월세는 80만 원에 육박합니다. 다행인 건 역세권 청년주택을 대폭 늘릴 수 있도록 서울시가 최근 조례를 개정했다는 겁니다.


청년 주거 관련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 대표는 저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들이 중간에 끼여 있어요. 이게 절대로 어떤 공공성을 가진 정책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이름만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는 것에 청년들이 '쓰이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청년 주거문제, 근본적인 해결책은 뭘까요?


제가 취재하며 내린 결론은 거시적입니다. 결국 부동산이 내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 구조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죠.


70~80년대 경제부흥기에 돈을 번 노년층이 부동산에 돈을 묶어놓으니 경제 규모에 비해 시장에 돈이 잘 돌지 않습니다. 돈이 돌지 않으니 경제는 위축됩니다. 경제가 위축되면 보통 부동산이 내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묶어놓은 사람들은 경제 불황과 크게 상관없는 상류층이니 계속 부동산에 돈을 쏟아부을 것이고, 서민들은 '인생역전'하려면 대출을 왕창 끌어모아서라도 부동산 투기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으니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거죠.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부동산 값이 오를수록, 약자인 청년들의 주거공간은 계속 줄어들고 좁아지며 비싸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공간이란 건 한정돼 있으니까요.


쉽게 말해, 청년주거 문제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어른들 탓이 가장 크다는 겁니다. 늘 결론을 말할 때는 조심스럽지만 이번만큼은 단언하고 싶습니다. 저도 몇 년 전 대출을 왕창 끌어모아 집을 샀고, 그 집값도 꽤 오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한 몇 달은 부동산 공부도 무척 열심히 했지요. 그러나 종국에는 '1가구 1주택'의 원칙을 지키고, 내가 머물게 될 집만 사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이상은 살 돈도 없고 반칙이며, 피해자를 만드는 전쟁에 뛰어드는 것 같았거든요.


<로드맨> 촬영 현장.


요즘 젊은 세대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다고들 걱정합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몸 뉘일 곳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는데, 그다음 단계인 결혼과 육아까지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요? 그들이 결혼 안 하고 아이 안 낳는다고 혀를 끌끌  게 아니라, 그 원인제공자가 누구인지 돌아보는 편이 문제 해결에 더 적합한 사고방식일 것입니다.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도 고생하는 시대, 누가 만들었나요? 어른들은 갈수록 잘 사는데 청년들만 가난해지는 나라에 미래는 없습니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47845_24634.html

(클릭하시면 뉴스로 볼 수 있습니다. 조촐한 글이지만 공유하시려면 댓글 남겨주시면 더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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