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세이 4
꽁꽁 언 땅은 자연스레 봄이 되어
녹았다고 생각했지만..
벼농사를 할 땅은 세 번 뒤집어야 한다.
(우리 집 기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들판과 논이 구분이 잘 되지 않았는데
아빠의 트랙터가 한 바퀴 돌고 나면
논과 논두렁이 구분되고
두 바퀴 돌고 나면
논에 있던 잡초들이 진흙더미로 변하고
세 바퀴 돌고 나면
물이 채워져 평평한 논의 모습을 갖춘다.
인생의 고비가 통틀어 세 번이면 좋겠지만
사실 해마다 제 나름의 고비들이 세 번 정도는 찾아오는 것 같다.
(이 역시 내 인생이 기준)
가족에서든 친구에서든 회사에서든
고비를 겪으며 내 마음이 수없이 뒤집어지고 갈아엎어지는데
지나고 보면
진짜 좋은 사람과 영 아닌 사람이 구분되고
지나고 보면
영 아닌 사람이 너무 좋은 사람이 되고
지나고 보면
좋은 사람도 영 아닌 사람도 아무 상관이 없게 되기도 한다.
우리들 속이 종종 뒤집히는 건
녹은 땅이 뒤집히는 것만큼이나
건강해지려는 자연의 섭리였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고난과 고비를 웃으며 관망할 만큼
성숙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지만..
이젠 속 뒤집히는 일들이 닥쳐올 때마다
그저 뒤집어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애써 참지 않고
애써 덮어두지 않고
굳이 더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한 번 뒤집어서 괜히 사람을 잃었다면
두 번 더 뒤집으면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도 하지 않을까.
괜히 한 번 뒤집었다가
후회하면서 이불 뒤집어쓰고
속상해하고 미안해하고 그러지 말아 보자.
과감하게 한 번 더. 뒤집어 블자.
여름이 다 되었는데
아직 녹지 않은 땅 속의 땅이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세 번 로터리 친 땅이 아주 평평하다.
내 마음도 아, 좀 평평해졌으면.
(다음엔 드디어 모내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