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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작가 박신 May 31. 2024

[농사인문학] 뒤집어 재끼기 -로타리

농사에세이 4


꽁꽁 언 땅은 자연스레 봄이 되어

녹았다고 생각했지만..

벼농사를 할 땅은 세 번 뒤집어야 한다.

(우리 집 기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들판과 논이 구분이 잘 되지 않았는데

아빠의 트랙터가 한 바퀴 돌고 나면

논과 논두렁이 구분되고

두 바퀴 돌고 나면

논에 있던 잡초들이 진흙더미로 변하고

세 바퀴 돌고 나면

물이 채워져 평평한 논의 모습을 갖춘다.


인생의 고비가 통틀어 세 번이면 좋겠지만

사실 해마다 제 나름의 고비들이 세 번 정도는 찾아오는 것 같다.

(이 역시 내 인생이 기준)

가족에서든 친구에서든 회사에서든

고비를 겪으며 내 마음이 수없이 뒤집어지고 갈아엎어지는데


지나고 보면

진짜 좋은 사람과 영 아닌 사람이 구분되고

지나고 보면

영 아닌 사람이 너무 좋은 사람이 되고

지나고 보면

좋은 사람도 영 아닌 사람도 아무 상관이 없게 되기도 한다.


우리들 속이 종종 뒤집히는 건

녹은 땅이 뒤집히는 것만큼이나

건강해지려는 자연의 섭리였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고난과 고비를 웃으며 관망할 만큼

성숙한 인생을 사는 건 아니지만..


이젠 속 뒤집히는 일들이 닥쳐올 때마다

그저 뒤집어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애써 참지 않고

애써 덮어두지 않고

굳이 더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한 번 뒤집어서 괜히 사람을 잃었다면

두 번 더 뒤집으면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도 하지 않을까.


괜히 한 번 뒤집었다가

후회하면서 이불 뒤집어쓰고

속상해하고 미안해하고 그러지 말아 보자.

과감하게 한 번 더. 뒤집어 블자.

여름이 다 되었는데

아직 녹지 않은 땅 속의 땅이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세 번 로터리 친 땅이 아주 평평하다.

내 마음도 아, 좀 평평해졌으면.

(다음엔 드디어 모내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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