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하면서 딴생각 많이하는)에세이
모내기를 도와야 한다며
5월~6월의 주말 약속을 미룰 때마다
듣는 소리
하나, 요즘 농사는 기계가 다 하지 않아?
두울, 나중에 귀농할꺼야?
오늘은 그 첫 번째 질문에 답하는 글을 적어본다.
모내기는 기계가 하는가.
농사는 누가 짓는가.
물론 모를 심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기계가 척척척 해내고 있다.
우리가 기차든, 버스든 타고 이동을 하다가 모내기하는 논을 마주한다면
필히 논에 덩그러니 이앙기가 홀로 논을 다니는 것을 보았을 텐데
그 구석진 곳에 옹기종기모인 사람들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이를 "모쟁이"이라고 부른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본격 "모쟁이"가 되었다.
새벽에 모판을 트럭에 300개가량 실어서 논으로 떠난다.
이앙기에 모판은 최대 (진심 내가 세어봄) 24개가 들어간다.
비료는 보통 모판 30개 정도에 1포대가 들어가고
제초제는 보통 모판 50개 정도에 2봉지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이앙기에 앉아 모를 심는 모내기는 아빠와 기계가 하고
모쟁이 2-3명이 부지런히 모판을 나르고 나르고
포대를 나르고 나르고 제초제를 쏟고 쏟고
빈 모판들을 가지런히 모아 10개씩 묶으고 묶으고
베테랑 모쟁이(엄마ㅋㅋ)는
기계가 가지 못한 구석구석에 모를 심기까지 한다.
모내기를 하는 것은 이앙기인가 모쟁이인가
모를 심는 모내기 자체는 이앙기가 하지만,
농사를 짓는 것은 모쟁이이다.
기다리고 옮기고 쏟아붓고 치우고
이 뒤치닥거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사실 농사의 절반은 모쟁이에게 달려있더라.
그런데 많은 이들이 논의 이앙기만을 주목한다.
'아빠, 모는 아빠가 모는 이앙이가 심었지만
농사를 짓는 건 엄마였네요.'
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시도때도 없이 올라온다.
애덤스미스시의 저녁을 차린 마가린여사처럼
농사 역사의 절반은 '엄마'들 이었는데
우리는 왜 '농부'의 이미지로 남자와 밀집모자만을 기억할까.
이제부터 나는 이앙기를 배울꺼고,
농부의 그림으로는 장화와 꽃무늬 햇빛가리개 모자를 쓴 엄마를 그릴 것이다.
농사에 짙은 성별의 역할을 지우고
직접 기계를 다루기를 배울 것이고,
모쟁이의 역할도 두루 섭렵하며
진정한 양성평등 농사의 세계를 만들어가보련다.
모내기로 할 말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다.
(모쟁이하면서 이앙기 기다리는 그 시간들은 딴 생각하기 최적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