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돕다가도 틈만 나면 딴생각에 빠지는 농사에세이
흔히 못자리하면
볍씨가 모가 되는 모판을 일컫기도 하고
볍씨를 뿌리는 일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자리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 위치, 흔적을 말하는 데
모내기를 해서 논에 모를 옮겨 심었어도
모가 자라는 논을 못자리라고 하지 않는 점.
볍씨가 모가 되는 자리와 행위를 못자리라고 하는 점.
이 지점에 대해 문득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본다.
아무래도 못자리라는 용어가
볍씨가 모가 되어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만 그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모내기는 이미 뿌리내린 모를 논 속 깊숙이 밀어 넣으며
'옮기는 것'으로 생각하는구나라고 판단하면
농부들은 뿌리내리는 곳만을 '자리'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진정한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뿌리를 내린 곳은 어디일까.
모내기 후 벼가 되기까지 평균적으로 5개월이 시간이 걸린다면
한 달 정도는 못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평균 수명을 85세로 생각하면
17살의 인생까지를 뿌리를 내리고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17살까지 뿌리를 내리던 나는
어디에서 어떤 햇살과 어떤 바람과 어떤 비를 맞았을까.
첫사랑의 태양은 매우 뜨겁게 불타올랐던 것도 같고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오해가 쌓여 아주 큰 소나기가 내리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건 아주 찰나의 사건과 사고들일뿐이다.
열일곱까지 내 일상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아주 뜨겁지도 아주 차갑지도 않던 가족의 온도였던 것 같다.
나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각자의 고단한 삶을 꾸려가던 부모님과의 적당한 거리
한 방에서 생활하며 모든 것을 공유하던 언니와의 관계
남처럼 지내다가도 결국엔 힘이 되어주던 남동생과의 추억들이
또 다른 한 일상은 이야기였다.
어렵지 않은 철학책, 고전문학을 특히 좋아했던 나는
파우스트와 오디세이를 아주 좋아하던 열일곱의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학기 초 쉬는 시간을 지탱해 주던 이야기 책들이
나의 상황을 피하거나 이해할 수 있었던 도피처가 되었다.
나의 자리는 가족과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새로 만난 가족들과
여전히 새롭고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마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자라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의 상황이나 성장의 상황이 닥쳐온다면
늘 가족과 이야기가 내 길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가족을 끝끝내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서 이야기나 캐면서
그렇게 한 농부의 글 쓰는 딸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