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농한기를 맞이하는 때의 사색
도시에서 살다보면
사람의 가치가 너무 극단적으로
사는 집, 타는 차, 입는 옷들로 평가된다.
땅의 가치는 절대 심어지는 작물로 매겨지지 않는다.
지금 눈에 보이는 작물은 그 땅에 잠시 머무는 과정이자 결과물일 뿐이다.
그리곤, 뒤집어져 다시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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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대청소를 핑계로 한 주를 건너뛰고
오랜만에 아빠집을 찾았다.
지지난주까지 벼로 가득했던 논이 급하게 뒤집어 지고 있었다.
아아,
땅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매번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기꺼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고집처럼 붙들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뒤집을 수 있는가.
항상 새로운 기회를 꿈꾸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어도
정작 새로운 것과 더 나아질 것을 위해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을 뒤집지 못하고 있다.
기회에게 내어줄 빈 공간이 없는 것이었다.
뒤집어지는 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인연들을 향한 미련
버려야 할 것을 알면서도 쉬이 고치지 못한 습관들을
뒤집고 뒤집고 뒤집었다.
그리곤 저 땅처럼 내 속에 새로운 도랑을 치는 것이다.
글쓰기 습관을 심는 도랑 한 줄을 치기위해
쇼파에 누워 티비보는 시간을 뒤집고
정리하는 습관을 심는 도랑 한 줄을 치기위해
숏츠 보는 시간을 뒤집고
나도 알지 못할 새로운 어떤 기회를 위해
별 쓸모없는 욕심들 따윈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그래. 내게 현재 별 쓸모없는 욕심이란.
차할부가 걱정되어 꿈보다 알바를 택한 지난 달의 나를 자책하는 것이다.
차할부만 끝내면 나는 반드시 알바는 그만두고 꿈에 시간을 내어줄 것이다.
차를 그냥 팔아버리면 될텐데. 차마 그건 뒤집지 못했다.. )
그리하여 어느새 사색이 끝나고 나니
논이던 아빠의 땅은
도랑이 아주 잘 쳐진 양파밭이 되어 있었다.
그래. 뒤집으면 변한다. 땅도. 사람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