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를 기억하는 방법
엄마의 엄마가 죽었다. 나는 그녀의 32번째 손녀였고 엄마는 8번째 딸이었다. 발에 차이는 딸 밭에서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여덟째 딸이 낳은 두 번째의 딸. 그 존재의 가치는 다음엔 꼭 아들을 낳으라는. 간절한 바람의 근간. 그것이 전부였다.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알기에 나 역시 할머니에게서 큰 애정을 느끼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랬던 그녀가 죽었다. 일 년 전 만남에서 마지막까지 내 이름을 재차 물었고 언니와 나를 세트로 묶어서 생각했다. 옆에 앉은 내 아들을 보더니 첫째가 아들이니. 잘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이 내가 그녀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칭찬이었다. 그 순간 마음 한편에 느껴버린 우월감.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지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되려 글 한자 모르는 남편에게 글을 가르쳤고 무너지는 가계를 일으킬 만큼의 패물을 가져왔다. 넉넉한 친정은 그녀의 든든한 뒷배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세 번 째에도 딸을 낳았을 때 무너졌다. 친정부모는 그녀의 집에 발길을 끊었고 그녀는 그 뒤로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넷째로 아들을 낳았는데 죽었다.
다섯 배에 다시 아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아들을 하나 더 낳아야 안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뒤로 그녀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 뒤로 딸만 여섯을 더 낳았던가 일곱을 낳았던가.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남긴다.
내가 그녀를 기리는 방법이다.
비록 관심 밖의 손녀로 크게 애정 없던 우리의 관계이기에 별다른 정리가 필요하진 않지만
그녀는 끝까지 나에게 숙제를 주고 떠났다.
무심결에 느껴버린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에 안도해버린 그 잠깐의 마음. 나는 그 마음과 평생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