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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n 26. 2024

어린 왕자의 바오밥 나무를 본 적 있나요?

브루나이 레이오버 이야기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중간에 다른 공항을 경유하는 비행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스탑오버(24시간 이상)'나 '레이오버(24시간 미만)'를 이용하게 되면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을 추가로 여행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방콕을 다녀올 때 브루나이 항공을 이용해 보았다. 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을 '레이오버'로 여행하기 위해서였다.


 새벽에 공항에 내려 숙소에 도착해서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는 다시 짐을 싸고 체크 아웃을 했다. 이제 저녁에 다시 공항에 가기 전까지 오늘 하루 남은 시간 동안 브루나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정말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챙기고 나머지는 숙소에 맡겨 놓은 다음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문득 하루 더 브루나이에 머무는 스탑오버가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잠시 머물다 떠나는 레이오버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유심도 사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예전에 종이 지도를 들고 여행하던 기분으로 미리 가고 싶은 곳을 구글맵에 체크를 해두었다. 구글맵은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브루나이에서의 첫 일정은 숙소 근처에 있던 시장 <따무 키양계>. 근데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 건지 시장에는 상인들도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시장 쓰레기통을 뒤지는 원숭이들을 더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따무 키양계 시장에서는 소소하게 채소나 과일들을 팔고 있었는데, 문 닫은 상점도 많고 손님도 거의 없는 상태라서 그런지 마치 쇠퇴해 가는 어느 시골의 시장처럼도 느껴졌다. 보통 더운 지방에서는 이른 아침에 시장이 열리기 마련인데, 그래서 어쩌면 내가 너무 늦게 간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낯선 곳에 가면 꼭 보는 장소 중 하나가 시장인데, 어쨌든 생각보다 볼 게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야야산 백화점 지하 슈퍼마켓. 먹거리 쇼핑은 여기가 가동 더 몰 지하보다 더 나아 보였다.
브루나이 기념품 샵이 있었지만 크게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시장을 뒤로 하고 수상 마을인 <캄퐁 아에르>를 강 건너에서 멀찌감치 구경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더워서 중간에 잠시 야야산 백화점에 들러 땀을 식히기도 했다. 사실 그냥 무작정 걸어 다닐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무더위 속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리 덥더라도 반다르세리베가완에서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한 군데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오밥 나무가 있는 공원이었다. 공원 근처에는 '황금 모스크' 라고 불리는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도 있어서, 브루나이에 가면 이 곳은 꼭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일단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브루나이 하면 무조건 소개되는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모스크 인근에는 포토스팟으로 마련된 프레임이 있는 공원이 있다. 날씨는 더웠지만 하늘도 예뻐서 별다른 스킬이 없더라도 사진을 찍으면 마치 엽서처럼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였다. 시끄러웠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최대한 피해가면서 나도 인증샷 한 장을 남겨주고, 다음으로 드디어 바오밥 나무를 보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 바오밥 나무. 아아! 바오밥 나무! 아직 아프리카에는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바오밥 나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브루나이에 가면 바오밥 나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반드시 꼭 보고 오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그래서 정말 쓰러질 것만 같은 무더위를 뚫고 지도에 체크해둔 바오밥 나무가 있다는 장소까지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정말로 갑자기 눈 앞에 바오밥 나무가 '두둥!' 하고 나타났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봤던 바로! 그! 바오밥 나무를 실제로 내가 보게 되다니!


 그런데 브루나이의 바오밥 나무는 아프리카에 있다는 그 거대한 바오밥 나무와는 달랐다. 생각보다 작아서 귀여운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마치 소설 '어린왕자'의 어느 한 페이지에 나올 것만 같은 바오밥 나무였다고나 할까? 어쩌면 사람이 없는 별이 빛나는 어느 밤에는 어디에선가 어린 왕자와 여우가 짠 하고 나타나서 바오밥 나무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도 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보고 싶었던 바오밥 나무를 마음껏 보고 또 보았다.




 바오밥 나무를 정말로 봤으니, 이제 브루나이에서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이후의 남은 시간은 그저 옵션일 뿐. 그래서 근처에 <The One>이라는 쇼핑몰이 있다고 해서 들러 더위에 절여진 몸뚱이를 식히기로 했다. 좀 쉬고 나서 브루나이의 또다른 명소인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도 보러 가고 싶었지만, 바깥의 무더위는 도저히 더 걸을 수가 없을 정도여서 그건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쇼핑몰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다트(Dart)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지나가며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 를 보는 것에 만족했다. 생각해보니 저기까지 걸어갔으면 다시 와이파이가 있는 장소를 찾아가야만 택시를 탈 수 있었으리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택시는 공항으로 나를 태워줄 호텔 셔틀버스를 만나기로 약속해둔 가동의 <The Mall>에 나를 내려주었다.




 다트 기사님은 꽤 점잖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편안하게 운전해주어서 기분 좋게 쇼핑몰에 도착할 수 있었다. (<The One>에서 가동 지역까지 요금은 5 브루나이 달러였는데, 이상하게 다트 어플에 카드가좀처럼 등록되지 않아서 결국 챙겨갔던 싱가폴 달러로 결제를 해야만 했다.) 호텔 셔틀버스를 만나기로 한 시각은 저녁 7시 반. 그때까지 난 에어콘이 나오는 쇼핑몰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상점도 둘러보고 근처 가동 잡화시장도 구경하고 '커피빈'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기도 하고, 그리고 필리핀 국민 패스트 푸드점이라고 하는 '졸리비'에서 저녁도 먹었다. 마지막으로 지하 슈퍼마켓에서 남은 현금을 털기 위해 먹을 것들을 사기도 했다.




 저녁 7시반, 호텔 직원의 실수로 우여곡절 끝에 호텔 셔틀버스를 타서 공항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1달러로 산 버터 옥수수를 먹고 공항 게이트로 들어갔다. 더운 날씨 탓에 땀을 많이 흘려서 씻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는데, 그 때 공항 내 호텔인 '네스트 호텔' 옆에서 개방된 무료 샤워실을 발견했다. 비록 샤워실에 샴푸나 바디워시 같은 건 하나도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환호하고 또 환호했다. 짐을 뒤져 세면 도구와 수건을 대신할 티셔츠 하나를 꺼내 들고는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개운하게 씻고 공항 의자에 눕자 브루나이에서의 오늘 하루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있었어도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고 또 오랜만에낯선 곳을 만나는 여행이기도 했기 때문에, 출발하기 전에는 막연한 걱정들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그런 걱정들은 어느샌가 없어져 있었다. 뭐랄까, 어려워 보이는 일도 막상 해보면 별 게 아닐 때가 많은 것처럼, 여행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떠나기 전에 했던 우려와 걱정들은 언제든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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